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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Aussie / 인물









                                               Nellie Melba







                                                                               넬리 멜바












                ✚ 생애


                넬리 멜바 여사(Dame Nellie Melba, GBE, 1861년 5월 19일 ~ 1931년 2월 23일)는 오스트레일리아
                의 소프라노 가수이다. 멜바는 멜버른에서 따온 예명이고 본명은 헬렌 미첼이다. 스코틀랜드계의 부모
                에게서 태어나 어릴 적부터 음악을 좋아하여 성악뿐 아니라 폭넓은 음악공부를 했다.

                1882년 결혼하여 이듬해 아들을 낳았지만 남편과는 1년 남짓만에 별거한 이래 다시 멜번에서 성악 활
                동을 하면서 1884년 첫 전문 공연을 한 후 영국 런던으로 건너갔다. 하지만 1886년 큰 성과 없는 데뷔
                이후 프랑스의 파리에서 실력을 쌓아 어려움 끝에 1887년 10월 벨기에 브루셀의 라 모네 극장에서 데
                뷔하며 시대의 성악가로 자리잡게 되었다.  1889년 5월 8일, 토마의 오페라 <햄릿>의 오필리아 역으                             직업
                로 파리 국립 오페라극장에 데뷔하여 성공을 거두고 이어 질다와 루치아도 노래했다.                                           성악가수 _  1861년  5월  19일생
                그리고 1889년 6월 15일, 그토록 그녀를 냉대했던 코벤트 가든 무대에 돌아온 멜바는 구노의 오페라
                <로미오와 줄리엣> 공연에서 당대 최고의 테너인 폴란드의 명테너 얀 데 레츠케를 상대역(로미오)으
                로 줄리엣 역을 노래하여 일대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키며, 마침내 당당히 코벤트 가든 무대를 정복했다.


                한편 멜바는 이탈리아의 팔레르모, 피렌체, 토리노, 제노바, 베르가모 등지의 오페라극장에 데뷔하였
                고, 이밖에도 스웨덴, 덴마크, 독일, 오스트리아의 오페라 무대에 섰다.


                멜바는 1894-1896년, 1900-1903년, 1905-1906년 및 1911-1912년에 걸쳐 메트에 출연하며 당대
                제1의 리릭 콜로라투라 소프라노로서 세계적인 명성을 떨쳤다. 특히 '영원한 테너의 전설' 엔리코 카
                루소와 콤비를 이루어 노래한 <라 보엠>은 아직까지도 메트의 역사에서 가장 위대하고 감동적인 공
                연의 하나로 기록되고 있다.


                복숭아 디저트인 '피치 멜바와 같은 음식들의 이름에까지 영향을 미친 '시대의 인플루언서 였던 그녀
                는 1900년에야 공식적으로 이혼하였으며 호주 밖에서 주로 활동하면서도 고국을 잊지 않아 1902년
                첫 호주 및 뉴질랜드 공연을 시작으로 20세기는 호주에서 활동에 비중을 늘렸으며 음악학교를 창설하
                고 1차 세계대전 때 전쟁 기부금을 조성하는 등 자선사업에까지 힘써 1918년에는 남성의 '경 (Sir)'에             드사>가 오케스트라를 그녀의 저택으로 보내는 등의 노력을 기울인 후에도 몇 년을
                해당하는 '여사(Dame)'라는 칭호를 받았다. 1927년 4월에는 호주인으로서는 처음으로 타임지의 표지               더 협상해서 음반을 출시할 정도였다고. 그녀의 마지막 협상조건은 음반 가격사상 최
                인물이 되었으며, 1930년 6월 10일 런던에서의 생애 마지막 자선 공연 후 귀국하여 이전 유럽에서 받               고액이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멜바는 조국 호주에서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었
                은 치료의 후유증으로 일어난 패혈증으로 1931년 2월 23일 시드니에서 69세로 영광의 삶을 접자 세                다. 작은 규모의 자선공연에도 기꺼이 참여했고, 학생이 몇 되지 않는 <멜버른 음악원
                계의 언론이 그녀의 죽음을 1면 주요 기사에 실었을 정도로 국내외가 슬픔에 잠겼다.                           >(Melbourne Conservatorium of Music)에서 노래를 가르치기도 했다. 그 학교는 지
                                                                                         금 <멜바 음악원>으로 불린다.

                ✚ 호주 화폐에 등장                                                              그런 연유로, 1996년에 멜바의 초상이 최고액권 지폐에 등장하자 호주 국민들은 크게
                                                                                         환영했다. 특히 멜바의 대를 이은 세계적인 소프라노 존 서덜랜드는 2002년 시드니 오
                함께 오페라 무대에 올랐던 테너 카루소가 시기심을 느낄 정도로 폭발적 인기를 모았던 멜바는 까다                    페라하우스에서 열린 은퇴공연에서 "멜바와 같은 나라에서 태어났다는 자긍심으로 노
                롭기로 소문난 소프라노였다. '코벤트 가든의 여왕'이었던 그녀의 음반을 내기 위해 <그라마폰 레코                   래했다"면서 "그래서 호주 $100짜리 지폐가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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