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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에 대하여...
안톤 브루크너
브루크너는 교사이자 오르가니스트인 아버지에게 음악 브루크너 자신의 유약함 내지 꼼꼼함이 덧붙어 지금까
을 배우기 시작했다. 지도 문제가 되는 수많은 개정판이 만들어지게 되었다.
그는 보조교사로도 일했고 마을 악단에서 바이올린을 브루크너는 생애의 거의 마지막에 이르러서야 제 7번과
켜기도 했으며 마침내 성 플로리안 성당의 오르가니스 제 8번 교향곡, 테 데움의 성공을 맛볼 수 있었으나 때는
트가 되었다. 생전에 오르가니스트로서 국제적인 명성 너무 늦었다. 그는 빈에서 사망했고, 그의 유해는 성 플
을 얻었으며, 특히 즉흥 연주에 능했다고 한다. 로리안 성당의 오르간 아래에 안장되어 있다.
그는 나이가 들어서도 계속 여러 스승에게 작곡이나 대 작품 성향
위법 등을 배워나갔으며 빈 음악원과 빈 대학에서 교직
을 맡기도 했다. 그러면서 열한 개의 교향곡과 세 개의 브루크너의 중요한 작품으로는 교향곡과 종교음악을 꼽
미사, 테 데움 등의 종교 음악을 작곡했다. 을 수 있다. 이외에도 실내악 작품이나 피아노 독주곡
등을 음반으로 찾아볼 수 있다. 19세기 서양고전음악에
그러나 그의 음악은 살아있는 동안 많은 비난을 받았는 서 브루크너 작품의 위치는 슈만, 브람스가 계승한 신고
데, 이는 그가 바그너의 추종자(바그너파)로 알려져 브 전주의적인 구조와 슈베르트가 보여준 개성화된 내용
람스를 신봉하는 많은 비평가(브람스파)의 조건 없는 공 의 결합이며 이러한 경향은 구스타프 말러로 계승된다.
격 대상이 되었기 때문이기도 하며, 그의 음악을 있는
그대로 이해해주는 사람이 주변에 드물었기 때문이기 한편, 가톨릭 신자이기도 했고 교회 오르가니스트였기
도 하다. 에 브루크너의 종교음악은 펠릭스 멘델스존 바르톨디
이후 낭만주의 종교음악의 맥을 잇는 역할을 했다는 점
그의 제자인 페르디난트 뢰베, 프란츠와 요제프 샬크 형 도 간과할 수 없다. 그의 종교음악은 대규모 합창과 교향
제 등은 항상 그의 음악을 청중들이 더 '이해하기 쉽게' 악의 결합으로 대변될 수 있으며 이러한 경향은 루트비
한다는 명분으로 개작하도록 브루크너를 압박했고 이에 히 판 베토벤의 장엄미사의 맥을 잇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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