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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Education / 교육





          프랑스의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




          프랑시스 풀랑크(Francis Poulenc)                                                                       마이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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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랑시스  장  마르셀  풀랑크(프랑스어:  Francis  Jean  남겼는데, 축음기의 중요성을 깨달은 1세대 작곡가들 중  만들어준  연극  《여왕  마고La  Reine  Margot》에  16
          Marcel Poulenc, 1899년 1월 7일~1963년 1월 30일)       한 명이라고 할 수 있다.                                  세기  춤곡  풍의  음악을  붙여  쓴  《프랑스  모음곡Suite
          는 프랑스 가곡인 멜로디, 피아노 독주곡, 실내악, 합창곡,               말년부터  큰  명성을  얻기  시작했는데,  처음에는  주로              fran aise》이 대표적이다. 진중한 면모는 1950년대에나
          오페라,  발레,  관현악곡을  비롯해  수많은  곡들을  남긴             해학적이고  가벼운  음악들이  사람들의  관심을  받았다.               널리  받아들여지기  시작하였고,  그  이전의  비평은  모두
          프랑스의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이다.  대한민국에서는                  그러다 21세기에 들어서 《카르멜회 수녀의 대화 (1957)》              풀랑크를 가벼운 느낌의 곡을 쓰는 사람으로 간주한다.
          뿔랑이라고도 알려져있다.                                   나 《인간의 얼굴 (1943)》 등 좀 더 무거운 음악들이 주목을
                                                          받기  시작했고,  성악곡들과  합창곡들이  많이  연주되기               음악적 특성
          프랑스  6인조의  일원으로  파리  출신이며  어릴  적부터              시작했다.                                           풀랑크는  기본적으로  온음계를  사용했는데,  그  이유는
          모차르트와  드뷔시를  열렬히  사랑하였다고  한다.  초기                                                               타고난 선율 창작의 재능에 기인한다.
          작품에서  그  영향을  찾아볼  수  있으며,  전체적으로는              1920년대, 인기를 얻다
          스트라빈스키나 사티의 영향도 엿보인다.                           풀랑크는  1920년대  초부터  국제적으로,  특히  영국에서             음악학자  로저  니컬스Roger  Nichols는  “[풀랑크에게]
                                                          피아니스트와 작곡가로서 인정을 받는다.                           가장 중요한 요소는 선율인데, 아직 탐구되지 않은 가락의
          생애                                                                                              영역에서  막대한  보물창고로  가는  길을  찾아냈다고  할
          풀랑크는 부유한 공장주인 아버지 밑에서 태어나 가업을                   1921년  《맨체스터  가디언》의  한  기사는  “이제  막  20         수 있다. 이 영역은 최신 음악계의 계속 탐구와 작업 끝에
          이을  것으로  여겨져  음대에  진학하지  못하였다.  따라서             대에  접어든  젊은  사내인  프랑시스  풀랑크를  주시하고              소진되었다”고  평가한다.  논설가  조지  켁George  Keck
          그는 음악을 독학하다가, 피아니스트 리카르도 비네스의                   있다. 그는 소극 장르를 우선적으로 파보는 것이 좋겠다”                 은  “단순하고  편안하며,  쉽게  기억되는데,  무엇보다도
          가르침을  받는데  그는  풀랑크의  부모님이  돌아가신  뒤              고  평했다.  특히  해당  기사를  쓴  어니스트  뉴먼은  코넷,         감정표현이 풍부하다”고 말한다.
          그의 멘토가 되어준다.                                    트롬본, 바이올린, 타악기의 특이한 구성을 가진 풀랑크의
                                                          가곡  《코카르데Cocardes》처럼  달콤하게  우스꽝스러운              주요 작품
          풀랑크는  또한  에릭  사티와도  일면식이  있어  그의  후견            음악은 거의 들어본 적 없다고도 덧붙였다.                         가곡:  풀랑크는  많은  수의  가곡을  썼으며  1930년대와
          하에 젊은 프랑스 작곡가의 모임인 6인조(프랑스어: Les                                                                1940년대에 쓴 곡들이 가장 훌륭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Six)의 하나가 된다. 풀랑크의 초기작품들은 활발함과 그                1930년대, 진지해 지다
          특유의 불손함이 특징이다.                                  1930년대  초  풀랑크는  2년간  멈췄었던  가곡  작곡을             실내악:  풀랑크의  실내악은  크게  세  시기로  나뉜다.
                                                          재개한다. 리노시에를 추억하며 말레르브의 시로 가곡 《                  22세  이전에  작곡된  작품들을  초기  실내악  작품으로
          그러나 1930년대에 들어 좀 더 진중한 부분이 계발되는데,               묘비명Epitaphe》을  짓는데,  “어떻게  봐도  심원한  곡”          분류하는데,  클라리넷  소나타  두  곡(1918),  두  대의
          1936년을  시작으로  종교음악들이  가벼운  음악들을                 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이듬해에는  아폴리네르와  막스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1918),  클라리넷과  바순을  위한
          대체해나가는  모습에서  이러한  음악적  전환을  엿볼  수              자코브의  글로  세  개의  가곡집을  작곡한다.  이  곡들  중          소나타(1922), 호른, 트럼펫, 트롬본을 위한 소나타(1922)
          있다.                                             일부에서  진지한  분위기가  나타나지만,  나머지는  그의               총 네 개의 소나타가 이에 포함된다.
                                                          다른 1930년 초 곡들과 마찬가지로 가벼웠던 과거 작풍을
          풀랑크는  또한  훌륭한  피아니스트이기도  했는데,  특히  떠올리게 한다.                                                     관현악:  풀랑크의  대표적인  대편성  관현악곡으로는  두
          성악  고문이었던  바리톤  피에르  베르나크,  소프라노                                                                편의  발레와  《신포니에타Sinfonietta》,  그리고  건반을
          드니즈  뒤발과  구미를  돌며  피아니스트로서의  명성을                모든 곡이 진지했던 것만은 아닌데, 이본 프랭탕을 스타로                 위한 협주곡 네 편이 있다.
          얻었다.  이  때를  비롯해  1928년  이후로  많은  녹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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