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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Entertainment / 엔터테인먼트




                                                          전국노래자랑의 대명사 코메디언 송해 씨(이 양반도 고향이 황해도다)           억속에서도 제일 징글맞았던 것으로 바로 중공군의 개입을 꼽으셨다.

               씨드니 쌈돌이의                                   의 사회로 진행되는 행사는 어린 필자에게 많은 추억을 남겨 주었다.           중공군이 몰려 올 때는 하늘이 다 캄캄하셨단다. 얼마나 많이 몰려오
               시드니 이야기 제 729회                             TV 화면 속에서나 볼 수 있었던 연예인을 실물로 보는 것도 신기했고,         는지 산과 들이 온통 중공군으로 덥혀 밀려오는데... 사람이 어떻게 저
                                                          그가 화면에서 전 국민을 상대로 보여주는 코메디말고도 기가 막힌 장           렇게 많을 수가~ 하며 질려버리셨단다. 그런 와중에서도 부상을 당하
               글 한용훈 ssamdorihan@gmail.com
                                                          기자랑이 이어지는데... ‘아... 저렇게 재주가 많으니까 TV 에 나오는구      며 살아남으신 울~ 아버님. 다시금 존경스럽기만 하다.
                                                          나’ 하고 이해를 했다.                                   어머님은 고생스러운 피난길을 말씀하신다.
                                                                                                          손과 머리에 이고 지고 들고 갈만큼의 보따리를 챙긴 피난민의 행렬은
                                                          특히 축구시합을 할 때 같이 뛰었던 이 세연 선배.                    끝없이 이어지는데... 어쩌다가 들어서는 마을에는 보복성 시체들이 함
                       시드니에서 만난 6.25
                                                          그는 그 당시 국가대표 선수생활을 끝내고 후배양성을 하는 축구 감            부로 나뒹굴기도 하고, 전깃줄에 참새들처럼 걸려 있는 시체들이 지친
                            - 제 2 화 -                     독이었지만 이북 5도 체육대회 때는 선수로 활약을 했기 때문에... 팔         피난민들을 맞이하고...
                                                          팔한 청춘이었던 필자가 그와 함께 같은 운동장에서 뛸 수 있는 영광           가장 두려운 존재는 바로 쌕쌕이 비행기였단다.
                                                          을 얻을 수 있었다.                                     하늘을 울리는 굉음과 함께 갑자기 나타난 비행기는 피난민들을 향해
                                                          국가대표 출신이 잡은 공을 한번 뺏어 보려고 기를 쓰고 달겨 붙었지           기관단총을 무차별 난사... 놀란 피난민들은 논두렁으로 몸을 굴려보
                                                          만 과학적(?)으로 볼을 컨트롤하며 자로 잰 듯한 킥을 구사할 때에는 ‘        지만 여지없이 사람을 동강내버릴 듯한 기세로 뿌려지는 총탄...에 뒹
                                                          국가대표라는게 정말 대단한 실력이로구나’ 하고 감탄사가 절로 나오            구는 시체들, 토막 나서 피범벅이 된 팔과 발...
                                                          게 된다. 여하튼 그 덕분에 필자는 곧잘 “나는 국가대표하고도 같이 뛰         방금 전까지 같이 걷던 사람들이 눈 깜짝 할 새에 주검으로 변하고...
                                                          어봤어” 하며 은근히 자랑을 했다. 여하튼 이북을 고향으로 둔 부모덕          그 공포가 얼마나 크셨는지 전쟁이 끝나고 오십 여년의 세월이 흐른 뒤
                                                          분(?)에 유명 연예인과 국가대표 축구선수와 대면할 수 있었다는게 하          에도 경비행기 소리만 들리면 가슴이 철렁~ 하신다는 어머님.
                                                          나의 자랑거리였다.                                      전쟁의 참혹함은 그 당시에만 국한된 게 아니었다.

                                                          갈 수 없는 땅... 이북이 바라다 보이는 산을 공동구입해 절기마다 찾아        2011년 시드니에서 맞이한 6월 25일.
                                                          와 고향 쪽을 바라보며 술잔을 기울이시던 어르신들...                  ‘6.25 사변‘ 국제적으로는 한국전쟁 ‘Korean War' 라고 불린다.
                                                          귀동냥으로 들은 그분들의 사연은 한이 서린 이야기였다.                  이번 기회에 6.25 사변에 대해서 정확히 알고 대처(?)하여 다시는 우리
                                                          필자의 부모님께 들은 6.25 전쟁 이야기는 정말 참혹했다.               땅에 이런 전쟁이 발발하지 않도록 정신무장과 함께 우리의 2세들에
                                                          전쟁터에서 수없이 목숨을 잃을 뻔 하셨던 아버님은 그 많은 전쟁의 기          게 역사교육의 페이지가 되기를 바란다.          [ 다음주에 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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