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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Sports / 스포츠
마이라이프가 전하는 한 주간의 국내외 스포츠 소식
'남은 약속' 지키지 못하고… 하늘의 별이 된 월드컵 스타 유상철
인(발렌시아)이다.
2009년 춘천기계공고에서 본격적인 지도자 생활을 시작한 그
는 2011년 대전시티즌(현 대전하나시티즌)을 맡아 프로 사령탑
으로 데뷔, 이듬해까지 지휘했다.
2014년부터는 울산대 감독으로 경험을 쌓은 그는 2018년 전
남 드래곤즈의 부름을 받아 프로 무대에 복귀했으나 8개월 만
에 성적 부진에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
이후 2019년 5월 부임한 인천은 '축구인 유상철'이 몸담은 마지
막 팀이 됐다. 최하위권을 맴돌던 인천의 1부 잔류라는 막중한
임무를 안고 매 경기 살얼음판 같은 생존 경쟁을 치러야 했다.
시즌이 막바지이던 그해 10월 황달 증세로 입원한 유 전 감독
은 11월 췌장암 4기 진단을 받았다고 구단 소셜 미디어로 직
접 밝혔다.
선수 시절 그라운드에서 불태운 혼은 벤치에서 '열정의 리더십'
으로 승화했다. 그는 병마와 싸우며 1부 생존을 위한 경쟁도 놓
췌장암 투병 끝에 7일 오후 5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유상 한일 월드컵에선 거스 히딩크 감독이 이끈 대표팀의 주축으로
지 않았다. 당시 인천의 '잔류 드라마'는 팀을 이끄는 유 전 감독
철 전 인천 유나이티드 감독은 성인 국가대표로만 124경기에 '4강 신화'를 이끈 뒤 히바우두(브라질), 미하엘 발라크(독일) 등
의 상황과 맞물려 더 극적으로 펼쳐졌다.
출전하며 한국 축구의 대표적인 멀티 플레이어로 이름을 날 과 대회 올스타 미드필더 부문에 뽑히기도 했다.
린 '레전드'다. 한일 월드컵 이후엔 대표팀 주장을 맡았고, 2004년 아테네 올
K리그 현장은 물론 일본에서도 경기장에 걸개가 걸리는 등 '응
림픽엔 와일드카드로 출전해 8강 진출에 기여했다.
원 물결'이 일어난 가운데 인천은 2019시즌 정규리그 최종전에
1994년 울산 현대 유니폼을 입고 프로 생활을 시작하고 그해
서 경남 FC와 비겨 10위를 확정하며 1부 잔류를 결정지었다.
A매치에도 데뷔한 그는 일찌감치 유럽 무대에서도 통할 만한 프로 선수로는 울산 외에 일본 J리그의 가시와 레이솔과 요코
인천의 잔류가 결정된 뒤 창원축구센터 관중석에는 '남은 약속
재목이라는 평가를 들을 정도로 소속팀과 대표팀에서 두각을 하마 마리노스에서 맹활약한 그는 2006년 현역에서 은퇴했다.
하나도 꼭 지켜줘'라는 현수막이 걸렸는데, 1부리그 생존 경쟁
나타냈다. K리거로는 울산에서만 뛰며 통산 142경기 37골 9도움을
에 이어 병마와의 싸움도 이겨내고 돌아오겠다고 다짐한 유 감
남겼다. 일본 무대에선 특히 요코하마에서 4시즌을 뛰며
독에게 힘을 싣는 인천 팬들의 메시지였다.
키 183㎝의 탄탄한 체구에서 비롯된 강철 체력은 물론 골 감각 2003·2004년 리그 2연패 등에 힘을 보탰다.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의지력을 갖고 힘들더라도 잘 이겨내겠
과 헤딩, 수비 능력 등을 두루 갖춰 필드 플레이어의 웬만한 위
다"고 화답한 유 전 감독은 지난해 초 명예감독으로 물러나 마
치에 설 수 있었다. 선수 생활 동안 그는 '팔방미인'이자 '투지의 아이콘'으로도 유
음으로 인천을 응원하며 치료에 전념했다.
명했다. 2001년 6월 월드컵 전초전으로 열린 컨페더레이션스
프로 첫해 수비수로 K리그 시즌 베스트 11에 선정됐고, 1998 컵 때 멕시코를 상대로 후반 헤딩 결승골을 넣어 한국의 2-1 승
이후에도 유 전 감독은 요코하마 마리노스의 경기장을 방문해
년엔 미드필더, 2002년엔 공격수로 베스트 11에 뽑힐 정도로 리를 이끌었는데, 전반 경기 중 상대 선수와의 경합에서 코뼈
응원에 감사를 전하거나 방송에도 출연하는 등 이따금 모습을
다양한 포지션에서 단순히 뛰는 것을 넘어 훌륭히 소화했다. 가 부러진 가운데 풀타임을 소화한 게 뒤늦게 알려질 정도였다.
드러냈고, 인천의 부진이 이어질 땐 '전격 복귀설'이 나올 정도
1998년엔 K리그 득점왕(15골)까지 차지했다. 은퇴쯤엔 왼쪽 눈이 거의 실명된 상태로 선수 생활을 했다고 밝
로 건강을 어느 정도 되찾은 듯했다.
혀 또 한 번 팬들의 놀라움을 자아냈다.
1998 프랑스 월드컵 벨기에와의 조별리그 3차전 동점골, 2002
올해 들어서도 상태가 악화했다는 보도에 반박을 내놓는 등 종
한일 월드컵 폴란드와의 조별리그 첫 경기 추가골 등 태극마크 은퇴 이후 유 전 감독은 방송 프로그램 '날아라 슛돌이'에서 어
종 근황을 전하곤 했으나 끝내 그는 마지막 하나의 약속은 지
를 달고도 굵직한 득점들을 남겼다. 린 선수들을 지도하며 대중에 한층 친근하게 다가갔는데, 당시
키지 못한 채 너무 일찍 하늘의 별이 되고 말았다.
지도를 받은 대표적인 선수가 한국 축구의 미래로 성장한 이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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