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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Sports / 스포츠




















                                 왜 양궁 선수들은



 +                     활시위를 얼굴에 댈까?










 +                                                               이때 활시위가 입술과 코를 누른다. ‘저렇게 누르면 아프지 않           관심을 회피하는 냉정한 몸의 각도가 인식된다. 호의를 외면하

                                                                 을까? 선크림 다 지워지겠는데? 계속 저 자리에 활이 닿으면            는 차가운 시선까지 고스란히 느껴진다.
                                                                 굳은살 생기는 거 아니야?’ 같은 양알못다운 하찮은 생각을 하
                                                                 곤 했다.                                        겉으로 보이는 것만 믿지 않고 감정의 온도가 몇 도쯤인지 마
                                                                                                              음의 온도계를 들이댄다.
                                                                 그런데 이 행동에는 과학적인 이유가 있었다. 선수들이 화살의
                                                                 정확성을 높이는 방법이었다. 화살을 조준할 때 선수들은 항상            한여름 태양보다 더 환하고 뜨겁게 웃어도 그 사람의 마음속에
                                                                 같은 위치에 활시위를 고정하는 연습을 한다. 1㎜만 바뀌어도            는 0℃의 얼음이 차곡차곡 쌓여 있을 때도 있고, 영하 78.5℃
                                                                 화살이 날아가는 방향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의 드라이아이스가 가득할 때도 있다. ‘아, 이 사람에게 나는
                                                                                                              몇 도쯤으로 받아들여지는구나.’ 파악하고 딱 그만큼의 온도
                                                                 코와 입술은 감각이 예민하고, 얼굴 중심에 위치해 화살을 정            로만 대한다.
                   올림픽 같은 국제 경기가 펼쳐지는 시즌이 되면 평소에는 있는             확하게 조준할 수 있다. 감각이 기억하는 ‘명중’의 순간을 그대
                   지도 몰랐던 애국심이 총출동한다.                            로 재생하는 거다.                                   상대방의 온도가 몇 도인지도 모르고 무작정 뜨겁게 달려든 적
                                                                                                              도 있다. 세상 모든 일이 그렇듯 내 마음 같을 수 없다.
                   시상식 맨 위에 올라 금메달을 목에 건 선수들의 감격에 찬 얼            머리로 기억하는 건 시간이 흐르거나 주변 환경에 영향을 받
                   굴 안에서 피땀 어린 훈련과 연습의 시간이 슬쩍 비친다.               아  흐릿해지거나  오염되기  마련이다.  하지만  몸이  기억하는        내가  100을  주면  상대방에게  100은  아니어도  80은  기대하
                                                                 습관은 무의식이 만드는 행동이다. 양궁 선수들이 시위를 당             게 마련. 하지만 현실은 그 공식이 성립될 가능성이 거의 없다
                   물론 수상대 위에 올라간 선수에게만 해당하는 이야기는 아니              겨 연습할 때 줄이 늘 닿던 자리에 놓는 모습을 지켜보며 궁
                   다. 나 같은 평범한 사람은 감히 가늠할 수조차 없을 노력이 모           금해졌다.                                        모든 걸 다 쏟아부어 놓고 돌아오는 게 없어 허탈한 적도 많
                   여 결실을 볼 그 찰나를 위해 선수들은 자신의 호흡대로 경기                                                          았다.
                   에 임한다.
                                                                 내 몸의 감각이
                                                                                                              그건 내 선택이고, 후회하지 않을 만큼 줬다고 자신을 다독여
                   여러 종목 가운데 특히 양궁 경기를 볼 땐 세탁기 안에 들어앉            기억하는 습관은 뭘까?                                 보지만 본전 생각을 피할 수 없는 건 인간의 본능이다.
                   은 빨래가 된 기분이다. 경기가 진행되는 내내 영혼과 육체가
                   동시에 조여졌다 풀어지기를 반복한다. 그저 눈으로 보기만 하                                                          초탈의 경지에 오른 부처님이 아닌 욕심 많고 나약한 인간이기
                   는데도 몸 안의 수분이 다 빠져나간다.                         양궁 선수들이 코와 입에 새겨진 승리의 감각이 있다면, 내게            에 계산기를 두드리게 된다.
                                                                 는 상대방이 가진 마음의 온도를 느끼는 감각이 있다.
                   나라면 팔다리가 떨려서 제대로 서 있지도 못할 그 긴장되는                                                           마음속에서는 수년째 ‘덜 주고, 덜 받기 운동’이 진행 중이다. 기
                   순간, 선수들은 심장을 한국에라도 놓고 온 듯 대담하게 화살             줄이 코와 입에 닿았을 때의 감각을 통해 명중의 확률을 높이            대하지도 말고, 실망하지도 말자. 바라지도 말고, 후회하지도
                   을 쏜다. 숨이 멎을 듯한 긴장감을 꽉 채우고 두 손을 꼭 쥐고           는 것처럼, 마음의 온도가 닿았을 때의 감각을 통해 상대방의            말자. 원하지도 말고, 아쉬워하지도 말자. 받은 만큼 돌려주자.
                   응원하게 된다                                       마음을 느낀다. 남들은 별 의미 없이 지나치는 미세한 차이가            표현하는 만큼 표현해 주자. 건네는 만큼 보답하자.
                                                                 오감으로 느껴진다.
                    활시위를 당기는 선수들의 표정에는 이렇다 할 변화가 없다.                                                          이거면 충분하다. 더 많이 주려고도, 더 열심히 하려고도, 더
                   상대 팀 선수가 몇 점을 기록했는지, 자신이 직전에 쏜 화살이            그중에서도 부정적인 감정이 더 잘 느껴지는 편이다. 말 한마            마음에 들려고도, 더 애쓰려고도 하지 말자. 그냥 있는 그대로
                   어디에 박혔는지 중요하지 않다. 그저 당장 쏴야 할 화살에만             디에 싸늘해지는 표정이 눈에 보인다. 얼음송곳처럼 마음 깊은            자연스럽게 몸의 감각이 기억하는 그대로 모자람 없는 딱 그
                   집중한다. 줄을 힘껏 당겨 손을 턱 부근에 고정한다.                 곳을 찌르는 말투가 아프게 귀에 박힌다.                       만큼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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