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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Issue / 이슈

            1919년 3월 1일, 삼일절




            그날의 함성을 기억합니다






            3.1만세운동의 상징, 유 관 순








                                                                                   계몽운동가였던 아버지 밑에서 민족의식을 함양
            “만국이 평화를 주장하는 금일을 당하야 (…) 우리도 비록 규중에 생활하여 지식이 몽
            매하고 신체가 연약한 아녀자 무리나 국민 됨은 일반이요 양심은 한가지라 (…) 우리                         유관순(柳寬順) 선생은 1902년 12월 16일(양력 기준, 제적등본의 기록에는 음력인 11월
            는 아무 주저할 것 없으며 두려워할 것도 없도다. 살아서 독립기(獨立旗) 하에 활발한                        17일로 기재되어 있다.) 충남 천안군 동면(東面) 용두리(龍頭里)에서 태어났다. 부친은 유
            신국민이 되어 보고 죽어서 구천지하에 이러한 여러 선생을 좇아 수괴(羞愧)함이 없이                         중권(柳重權), 모친은 이소제(李少梯)로 선생은 이들 사이의 5남매 가운데 둘째 딸이었다.
            즐겁게 모시는 것이 우리의 제일의무가 아닌가. 간장에서 솟는 눈물과 충곡(衷曲)에서                         선생의 부친은 일찍이 기독교 감리교에 입교한 개화 인사로서 한말 가산을 털어 향리에
            나오는 단심으로써 우리 사랑하는 대한 동포에게 엎드려 고하노니 동포! 동포여! 때는                         흥호(興湖)학교를 세워 민족 교육 운동을 전개한 계몽운동자였다.이를 통해 민족의 실력
            두 번 이르지 아니하고 일은 지나면 못하나니 속히 분발할지어다.”                                   을 양성함으로써 국권회복의 목적을 달성하려 했던 민족주의자이기도 하였다.


            -3·1운동 시기 발표된 대한독립여자선언서 중에서-                                           선생의 부친은 구국의 신념과 방도가 기독교에 있음을 깨닫고 유빈기(柳斌基), 조인원(趙
                                                                                   仁元) 등 향촌 유지들과 함께 교회를 세워 민중 계몽운동에 노력하고 있었다. 선생 또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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