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4 - :: Mylife Weekly 797 ::
P. 24

MY Education / 교육


            클래식에 대하여...


            주세페 베르디                                                                                            마이라이프 QR코드
                                                                                                               주세페 베르디
                                                                                                               명곡 모음 듣기→

            베르디는 에밀리아로마냐 주 파르마현에서 1813년 10월 10             르디는 한때 작곡을 단념했을 정도였다.
            일에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당시 주로 행상들을 상대로 조
            그마한 여인숙 겸 잡화상을 경영하였다. 소년 시절의 베르디               그러나 친구들의 원조나 조언으로 베르디는 이 위기를 극복하
            에게는 이른바 천재 소년다운 에피소드는 아무것도 전해져 있               여 1842년부터 1850년에 걸쳐 14곡의 오페라를 썼다. 이러
            지 않지만 시골에서는 다소 그 음악적 재능이 눈에 띌 정도였              한 작품 가운데에는 <제1회 십자군의 롬바르디아인>(1843),
            다. 1832년 5월 18세 때 고향을 떠나 밀라노로 가서 밀라노  <에르나니>(1844),  <잔  다르크>(1845),  <레냐노의  전쟁
            음악원의 입학시험을 보았으나 실패했다. 음악원의 판정은 첫               >(1849) 등 애국적인 독립정신을 구가한 작품이 특히 뛰어났
            째로 음악원의 입학 자격 연령을 4세나 초과한 것, 둘째는 그             다. 당시의 이탈리아는 오스트리아나 프랑스의 압박하에 있어
            런데도  불구하고  베르디의  음악은  서투르고  소박하다  하였           완전한 독립국이라고는 할 수 없는 상태였다. 물론 이탈리아
            다. 결국 베르디는 밀라노에서 개인교수를 받아 작곡공부를  독립 운동의 외침도 점차 높아졌으나 베르디의 오페라는 그러
            시작했다.                                          한 이탈리아인들의 기분을 대변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베르디
                                                           는 오페라에 애국주의를 주입함으로써 오페라에 새로운 생명
            이듬해 베르디에게 기회가 왔다. 밀라노 악우협회(樂友協會)               을 불어넣었다. 이 시기의 베르디는 이탈리아인으로서 참으로
            가 하이든의 오라토리오 <천지창조>를 연주했을 때 베르디                애국의 상징이었다.
            는 대리 지휘자 역할을 했는데 이 때의 역량이 인정되어 악우
            협회로부터 오페라 작곡을 의뢰받은 것이다. 이리하여 최초의  <일트로바토레>(1853),  <라  트라비아타>(1853),  <돈  카를
            오페라 <산 보니파치오의 백작 오베르토>가 작곡될 예정이                로스>(1867), <아이다>(1871), <오텔로>(1887), <팔스타프
            었으나, 1834년에 베르디는 취직 차 일단 귀향하였고 1836년  >(1893) 등이 그 주된 작품이다. 이와 같은 작품에서 전과 같
            아버지 친구의 딸과 결혼했다. 그러나 이 동안에도 밀라노의  은 애국주의는 후퇴하고 어떤 정황, 또는 환경에서의 '인간 그
            화려한 오페라 분위기를 잊을 수가 없어 1839년 처자를 데리             자체'의 표현이 의도되기에 이른다. 그리하여 '인간성'을 오페
            고 밀라노로 이주하였다. 이 해 <산 보니파치오의 백작 오베              라로 표현하는 데 있어서는 아마 모차르트와 비견할 만한 최
            르토>가 밀라노 스칼라극장에서 초연되어 다소의 성공을 거                고봉이라 하겠다. <리골레토>, <라 트라비아타>, <아이다>
            뒀다. 26세 때의 일이었다. 유명한 악보 출판업자인 조반니 리            모두가 비극이나, 셰익스피어의 명작으로 된 <오텔로>는 비
            코르디가 이 오페라의 출판을 신청해 왔고, 스칼라 극장에서               극 오페라의 최고봉이다. 셰익스피어가 쓴 인간성을 이만큼
            도 3편의 오페라의 작곡을 의뢰해 왔다. 전도가 양양하였으나  훌륭히 오페라화할 수 있었던 작곡가는 아직까지 없다. 같은
            아들과 처를 차례로 잃어버리고, 더욱이 스칼라 극장이 오페               셰익스피어로 된 <팔스타프>는 베르디의 유일한 희극이다.
            라 부파를 작곡해 줄 것을 요구했기에 구상을 변경해서 <하루  여기에는 오페라 부파의 정신 승화, 고답적인 웃음의 교묘한
            만의 임금님>을 작곡했으나 무참히 실패하여 자신을 잃은 베               음악화가 보인다.








                           수강과목


                                피아노|바이올린|첼로|더블베이스

                               플룻|클라리넷 색소폰|기타|드럼|AMEB
                                    정부 규정에 따라 10월 11일부터
                                 Theory|HSC|취미반|현악 앙상블
                              백신접종 완료자에 한해 대면수업이 가능하게되었습니다~













              24 www.mylifeweekly.com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