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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프로필
MY Article / 기사제공
성 명 : 한 용 성 (韓 容 誠)
생 년 : 1955年生
학력사항 : 보성고등학교 卒
한국외대 베트남어과 卒
연세대 경영대학원 경제학과 (석) 卒
경력사항
1983. 03 ~ 2010. 05 우리은행 (부장)
2010. 05 ~ 2010. 06 토마토저축은행 (감사)
2010. 07 ~ 2014. 01 대한전선그룹 CFO /계열사 구
조조정 (부사장)
2014. 02 ~ 2017. 10 코리아에셋투자증권 IB총괄 (부
회장)
2017. 10 ~ 2018. 09 금호타이어 관리총괄 (사장)
2018. 10 ~ 2022. 09 ㈜ 에이프로 (부회장)
2019. 01 ~ 현재 케이프투자증권 (고문)
스리랑카 시기리야 (Sigiriya)
동양의 마추픽추
세계 8대 불가사의
가족의 비극이 만든 유적 통행료 내고 지나 갈래 나를 지려 밟고 갈래? ㅎㅎㅎ 난감하네~~~
“이따 릭샤 타고 호텔로 돌아갈 것이니 이제 가도 돼. 이따 호텔에서 봐.”
“Okay. 필요하면 전화주셔유~ 그리고 잠깐만.”
금새 릭샤 기사를 데리고 오더니 가격도 싸게 흥정해 놨으니 이것 타고 호텔로 오면 된다고 한
다. 언젠가부터 사람의 겉모습을 보고 인성을 판단하는 버릇이 생기고 그게 딱히 맞는 것은 아
니지만 어느 정도는 짐작한대로 맞는 것 같다. 어눌한 영어에 늘어지는 말투가 우리네 충청도
어르신의 사투리 같아 더욱 구수하고 친근하다.
‘찌질아. 인상보고 인성을 볼 수 있다는게 바로 연륜인데 니가 나이를 그만큼 드셨다는겨.’
릭샤 기사가 출입구까지 안내를 하겠다고 나서는데 사양하고 주변 경치를 보면서 사진도 찍으
며 여유롭게 마실을 나서는데 이게 자유여행의 매력 아니겠나. 외곽 성벽에 붙은 해자.
‘내가 찐 주인이 되어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우리가 살아가면서 몇 개나 될까?’
이러한 카샤파왕의 잔혹함에 화가 난 민심과 동생 목갈라나의 보복이 두려워 난공불락의 요새
정글 사이로 쭉 뻗은 우리네 논두렁길 같은 비포장 먼지길을 걸어 입구에 도착하니 외국인 단 도시를 건설하게 되었다.
체 여행객과 여고생 단체팀 등 으로 붐비고 있다. 안내인이 저기 창구로 가서 <시기리야 박물
관 입장권>을 사라고 한다. 카샤파왕은 건축과 예술에 조예가 깊어 성채로 오르는 길 절벽바위에 <거울의 벽 Mirror’s
“여보슈 난 박물관 관람 온 것이 아니라 시기리야 성채 보러 왔다고요.” wall>을 만들어 <천상의 여인도 heavenly Maidens>와 싱할라어로 압살라 요정의 아름다움에
“여기서부터 저기 사자바위 정상 까지가 모두 박물관여. 그러니까 언능 티켓이나 사오슈” 대한 찬사, 신화 등을 그려 놓았고 그 일부가 지금까지 남아있다.
시기리야 성채는 5세기 경 싱할리왕조 65대왕 카샤파왕이 건설하였고 영국 군인에 의해 발견 <사자 발톱 테라스 Lion’s Paw Terrace >의 성채 입구에는 사자상을 만들어 그 입을 통해서만
되어 1982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다. 이 성채를 건설한 카샤파왕은 적통인 성채에 오르게 하는 등 침략에 대비하여 완벽한 방어를 위한 성채를 만들었다.
이복동생 목갈라나에게 왕위를 계승하는 것에 반하여 반란을 일으켜 부왕 다투세나를 생매장
하는 만행을 저질렀고 동생 목갈라나는 살해 위험을 피해 남인도로 망명하였다. 이 성채는 7년만에 완공이 되었고 그 후 11년 후에 동생 목갈라나와의 전쟁에서 패배함으로 카
샤파왕은 바위에서 투신 자살을 하는 비운을 맞았다.
[다음주에 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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