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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Education / 교육














                                         클래식에 대하여...


                                                                                                     ↑↑↑↑
                                         카를 마리아 폰 베버                                            마이라이프 QR코드
                                                                                              스캔하고 명곡 모음 듣기

            베버는 1786년 극단의 음악감독을 맡았던 아버지와 그의 두번             그리고 1811년, 2곡의 클라리넷 협주곡과 바순 협주곡을 발표             고전기와 낭만주의의 특징이 섞여 있다. 초기에는 대체로 고
            째 부인 사이에서 태어났다.                                한 것을 시작으로, 1812년에는 교향곡 1번과 피아노 협주곡을,  전파 양식에 충실한 작품을 남겼으나 1810년대 중반 이후의
                                                           1813년에는 교향곡 2번을, 1815년에는 호른 협주곡을 연이어  작품에서는 낭만주의적인 성향이 본격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태어날 때 부터 병약했던 그는 골반에 문제가 있어 4살때까지  발표하였고, 1819년에는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무도에의 권
            걷지 못했다고 한다.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로부터 음악을 배웠              유'를 발표한다. 그러나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으니….                   베버는 오페라 작곡가로 특히 유명한데 그의 이름을 유럽 전역
            지만, 그보다는 아버지를 따라 극단을 구경하며 얻은 극과 음                                                              에 알린 출세작이 바로 오페라 마탄의 사수였다.
            악에 대한 경험이 더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1821년,  그가  작곡하여  베를린에서  초연한  오페라  '마탄의
                                                           사수'는 대성공을 거두고, 내용과 음악 모두 혁신을 보여 이               39살의 젊은 나이로 사망하는 바람에 많은 수의 오페라를 남기
            이후 10세 때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하고, 요제프 하이든의 동             후 낭만파 음악에 큰 영향을 미친다. 또한, 같은 해에 발표한  지는 못했으나 마탄의 사수를 비롯한 그의 오페라는 독일 낭만
            생 미하엘 하이든에게 작곡법, 대위법을 배운 후, 13세에 첫 가           '피아노  협주  작품  F단조'역시  호평을  받고,  이후  협주  작품      주의 오페라의 효시격인 작품들로 인정받고 있으며 모차르트
            극을 작곡하면서 작곡을 본격적으로 시작하였다.                      (Konzertstück)라는 형식을 많은 작곡가들이 사용한다.             에서 시작되어 바그너로 이어지는 독일오페라의 계보에서 중
                                                                                                           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한편 1804년에는 프로이센 왕국 브레슬라우 극장의 악장으               그러나, 이어 발표한 오페라 '오이리안테'는 흥행이 영 좋지 못
            로 취임을 하고 지휘 분야에서도 독일 곳곳의 극장들을 전전               하였고, 이로 인한 충격으로 지병인 결핵이 악화되었다.                  기악분야에서도 나름의 업적을 남겼는데 특히 피아노 분야에
            하면서 활동한다. 한편 20살 때 쯤에 초산을 포도주로 잘못 알                                                            서 혁신적인 기법을 가진 작품들을 많이 발표했고(그의 콘체
            고 마셔서 성대가 상해 목소리가 작아져 노래를 부르지 못했               이후 런던에서 다시 의뢰가 들어와 그의 마지막 오페라 '오베               르트스튀크와 무도회의 권유, F단조 피아노 협주곡이 유명하
            다고 한다.                                         론'을 작곡하지만, 초연 준비 중 극장 관계자와의 마찰이 심하              다) 무도회의 권유와 같은 작품을 통해 표제 음악의 길을 개척
                                                           였고 이로인해 건강은 더더욱 악화되어 4월 12일 초연을 마               하기도 했다.
            루트비히 판 베토벤과 친구였다. 베토벤보다 16살이나 어렸               친 후 그곳에서 6월 5일에 세상을 뜬다. 이때 나이는 겨우 39
            으나 나이를 넘어 꽤 친한 사이였다. 베버는 베토벤의 집을 방             세였다.                                            다만 특정 악기를 위한 레퍼토리 확충이라는 면에서 보자면 피
            문했을 때 방 안이 온통 악보와 옷으로 어질러져 있었지만 테                                                              아노곡보다 클라리넷을 위한 작품, 특히 두 개의 클라리넷 협
            이블에는 악보 용지 한 장과 끓는 커피가 있었다고 증언했다.              고전기와 낭만파의 중간 시기에 위치한 작곡가로 음악 성향도  주곡이 더 중요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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