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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Aussie / 인물
Ned Kelly
네드 켈리
✚ 생애
19세기 후반 호주에서 활동했던 전설적인 은행강
도이다. 출생지 : 빅토리아 주
안타까운 사연과 그 만의 독특한 신조로 인해 호주
호주 의적 _ 1854~1880
에서는 홍길동, 임꺽정 만큼이나 유명하다.
불우한 가정사와 가난한 자는 털지 않는 규칙으로
인해 의적으로 여겨졌고, 그 지역 시민들의 전폭적
인 지지를 받았다. 강도질 중에도 인질들을 후하게
대접하고 보상까지 한 덕분에 사형 선고를 받을 당
시 이에 반대하는 서명운동까지 있었다고 한다.
✚ 그레타 도적단을 창설하다
네드 켈리는 1854년, 가난한 아일랜드계 이민자 출
신인 아버지 존 켈리와 어머니 앨런 켈리 사이에서
3남으로 태어났다. 켈리 가족은 빅토리아 주 베버리
지에서 소작농 일을 하며 근근히 먹고 살았는데, 그
지역 지주들의 갖은 괴롭힘 때문에 간신히 입에 풀
칠을 할 정도로 궁핍했다. 지주들은 황무지 개척이라는 구실로 주인없는 빈땅을 무단으로 선점했고,
주변 농민들에게 무거운 소작료를 부과하곤 했다.
네드 켈리는 이러한 가정환경 속에서도 비교적 올곧게 자랐다. 하루는 물에 빠져 죽어갈 위기에 놓인 네드 켈리는 댄 켈리[5], 존 번, 스티브 하트를 동료로 삼아 그레타 도적단(Greta Mob)을 결성
친구를 구하기 위해 강에 뛰어들었고, 친구의 부모님에게서 금색 술이 달린 초록색 목도리를 선물받기 한다. 그들은 부자들의 우마를 탈취한 뒤, 멀리 떨어진 다른 농장에 데려갔다. 그리고 다른 부
도 했다. 그의 가족도 형편이 조금씩 나아지는 듯 하였다. 자들에게 되팔아서 이윤을 남겼다. 아직 통신 장비가 미비하던 시절이라 정보의 전달이 느렸기
때문에 상인들은 절도된 가축인지도 모르고 선뜻 매각 증서를 써주었다. 모든 증서가 협박이나
그러나 아버지 존 켈리가 죽으면서 그의 인생은 180도 뒤바뀐다. 악덕한 지주들이 켈리 가족의 땅을 공갈 없이 합법적인 방법으로 작성되었기 때문에 경찰은 그레타 도적단을 어찌할 수 없었다.
빼앗기 위해 허위 신고를 하였고 아버지는 절도죄의 누명을 써 노동교화형을 선고받고 건강이 악화
되어 죽고 만 것이다. 피해가 막심해지자, 정부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레타 도적단을 잡아들이라는 명을 내리고 그
해 토벌대가 조직된다. 4명의 무장경찰로 이뤄진 첫번째 추격대는 매우 자신만만하게 출발했
그의 가족은 가세가 크게 기울어 집값이 더 싼 그레타의 오두막으로 이사하게 된다. 방황하던 그는 아 다. 그들은 자신들이 역추적당하고 있다는 사실도 모른 채로 전리품을 어떻게 나눌지 떠들며 호
버지의 친구 해리 파워[1]를 만나 범죄의 길에 들어서게 된다. 기롭게 전진해 나아갔다. 추적대가 스트링이바크에서 야영하는걸 확인한 도적단은 추적대 중
두 명이 외출한 틈을 타 기습을 가한다. 조잡한 사냥총과 콜트 리볼버 1정이 전부였지만 어둠
둘은 부자들의 말과 소를 털며 한동안 그 일대에서 유명한 무법자로 활동한다. 하지만 켈리의 삼촌이 과 고지대를 이용해 교전에서 승리한다. 항복한 매킨타이어 순사를 제외하고, 저항했던 3명은
해리를 밀고하면서 해리는 경찰에 체포당했고, 사람들은 켈리를 배신자라고 생각하여 온갖 비난을 하 바로 사살된다.
였다. 그는 범죄에서 손을 털기로 마음먹고 이를 감내한다.
그리고 도적단은 이날 이후로 "그레타 갱단"이라는 새로운 칭호를 얻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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