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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Article / 기사제공




            “다시 신앙의 순결 정신으로”




            잉글랜드-스코틀랜드 종교개혁사




            학술탐사를 마치며 3





                                                                                      송영근 (알파크루시스대)
            [편집자주. 본 필드스터디 학술 탐사는 지난 6월, 알파크루시스 University College의 22명의 참여자들을 통해 이루어졌다.
            영국-스코틀랜드의 교회사의 발자취를 밟는 귀한 여정이었다. 본 학술탐사 기행문은 앞으로 몇 주 동안 나누어 기고한다. 본
            교는 하반기 학술탐사 (오는 11월 12-26일, 로마-그리스-터키. 문의: 0450-752-150)를 앞두고 있다.]

            에든버러(Edinburgh)에서 브리스톨(Bristol)까지


            아름다운 스코틀랜드의 에든버러를 뒤로 하고 탐사팀은 다시 남쪽으로 잉글랜드인 Carlisle로 이동했다. 그리고 아름다운 호수
            의 도시 그라스미어(Grassmere)와 윈드미어(Windmere)로 향하게 되었다. 그라스미어는 19세기 낭만파 시인인 윌리엄 워즈워
            스를 탄생시킨 곳이다.
                                                                                                               람이 아닌 그저 극장에서 공연을 하고 공연을 위한 각
                                                                                                               본을 쓰던 세익스피어가 그와 같은 엄청난 작품들을 남
            시인이 살던 집과 아름다운 마을을 돌아보며 영국의 목가적인 풍경에 잠기게 되었다. 이후 탐사팀은 리버풀로 이동하였다. 리버
                                                                                                               겼다는 것에는 다소 의아한 생각이 들기도 한다. 스트
            풀은 산업혁명을 대표하는 도시로서 석탄을 이용한 증기기관을 통해 영국의 산업혁명을 이끈 도시이다. 이를 통해 전세계를 식
                                                                                                               랫포드-어폰-에이번을 출발한 탐사팀은 브리스톨에 이
            민지화하면서 제국주의 영국을 만든 도시이기도 하다. 그리고 많은 양의 교역이 이루어지던 무역의 중심지이면서 동시에 대서양
                                                                                                               르게 된다.
            을 건너 신대륙 미국으로 건너가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배에 올랐던 로얄 알버트 도크를 볼 수 있는 곳이다.
                                                                                                               브리스톨은 영국 남서부에서 가장 큰 항구도시이다. 브
            도크는 많은 배들이 안전하게 항구로 진입할 수 있도록 잘 만들어져 있었다. 지금까지 잘 보존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반면에
                                                                                                               리스톨에서 John Wesley, Charles Wesley 의 사역의
            리버풀은 아프리카 로부터 온 흑인 노예들을 매매하기 위해 흑인 노예들이 영국으로 들어오는 관문이기도 했다.
                                                                                                               흔적이 있는 곳을 방문했다. 그 당시 브리스톨은 가난
                                                                                                               한 사람들, 광부들이 살던 곳이었다. Wesley 형제는 조
            현재 로얄 알버트 도크에는 ‘국제 노예 박물관’이 있다. 이곳에는 노예들의 유입 역사와 그들의 문화 그리고 노예들의 이동 동
                                                                                                               지 휫필드의 요청으로 이곳에 와서 말씀을 전하는 사
            선 등을 볼 수 있고 노예제도를 철폐시킨 윌리엄 윌버포스 등을 소개하고 있다. 그 당시 교회들이 노예매매에 관여한 것에 대
                                                                                                               역을 시작했다.
            해 200년이 지난 2006년에 교회는 공식적인 사과를 하였다. 이렇듯 리버풀은 희망과 슬픔을 동시에 안고 있는 도시가 되었다.
                                                                                                               John Wesley 의 동생인 Charles Wesley 는 수많은 찬
            리버풀은 또한 유명한 대중음악 가수인 비틀즈가 활동했던 도시이다. 비틀즈가 초연했던 캐번 클럽과 료얄 알버트 도크에 비틀
                                                                                                               송가를 만들었다. 그와 그의 아들 Samuel Wesley 가
            즈를 기념하는 동상과 그들의 노래를 소개하는 곳들이 있었다. 탐사팀이 방문한 날이 마침 금요일 오후라서 곳곳에서 젊은이
                                                                                                               실제로 살던 곳도 방문할 수 있었다. 또한 세계에서 감
            들이 흥에 겨운 유흥을 즐기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비틀즈가 활동했던 시절에도 이렇게 많은 젊은이들이 이렇게 유흥을 즐겼을
                                                                                                               리교 건물로는 최초로 세워진 The New Room 을 방
            까 하는 의구심도 들었다.
                                                                                                               문하여 그 당시 열심히 복음을 전하며 예배를 드리던
                                                                                                               그리고 John Wesley 가 머물렀던 곳을 볼 수 있었다.
            리버풀을 떠난 탐사팀은 대문호 세익스피어의 고향인 스트
            랫포드-어폰-에이번(Stratford-upon-Avon)으로  이동했다.                                                            John Wesley 는 백마를 타고 지구를 10바퀴 도는 거
            작은 도시인 스트랫포드-어폰-에이번은 도시 전체가 세익스                                                                    리인 250,000 miles 을 여행하며 복음을 전했다. 그의
            피어로 가득한 도시가 되어 있었다. 세익스피어의 생가를 방                                                                   복음 전도의 열정을 볼 수 있었다.
            문하였고 세익스피어가 묻혀있는 성당도 방문할 수 있었다.
                                                                                                               또한 기념관 디렉터의 설명에 의하면 매일 새벽 5시에
            또한 도시 곳곳에 세익스피어 뿐 아니라 그의 가족들을 기념                                                                   성도들이 모여 정확하게 1시간 말씀을 듣고 출근하도
            하는 곳들이 있었다. 영어의 문법을 한층 격상시켜 지금의 품                                                                  록 하였다고 한다.
            위 있는 언어로 만든 세익스피어는 영국은 물론 전 세계의 존
            경을 받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는 노예제도가 있던 시절에 수많은 노예 매매가 있
                                                                                                               던 도시에서 모든 인간은 평등 하다고 선포하는 등 그
            그러나 높은 수준의 정규교육을 받았거나 학교에 속했던 사                                                                    당시 매우 혁명적인 메시지를 선포하였다. 따라서 주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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