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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Education / 교육





          바로크 시대 작곡가


          게오르크 프리드리히 헨델


                                                                                                          마이라이프
                              (George Frideric Handel)                                                 QR코드 스캔하고
                                                                                                         명곡 듣기 ▲




          게오르크  프리드리히  헨델(독일어:  Georg  Friedrich  음악상의 적수였다. 이들의 경쟁과 헨델을 질투하는 음모  음악적 특징
          Hä ndel, 영어: George Frideric Häandel 조지 프리더릭 핸들,  때문에 수차례의 파산과 세 번이나 죽을 고비를 당했지만  헨델은  그  명성을  거의  그의  극적  작품에서  얻었지만
          1685년 2월 23일 ~ 1759년 4월 14일)은 독일에서 태어나  헨델은  그를  원망하지  않고  오히려  보논치니의  질투를  통주저음을  바탕으로  성립되는  바로크적  협주양식에
          영국에서  활동한  바로크  시대의  작곡가이다.  헨델은  46            은근히 즐겼다고 한다.                                    기초를 두고 유려한 벨칸토의 성악적 멜로디와 결부하여
          곡의 오페라와 우수한 오라토리오를 비롯하여 오케스트라,                                                                  항상 간결·명쾌하며 밝은 표현을 나타냈다.
          바이올린, 쳄발로, 오르간 분야에 이르기까지 많은 작품을  1708년 피렌체와 베네치아로 수업하러 갔다가 이탈리아의
          남겼다. 그의 음악은 명쾌하고 호탕하며 신선하여 생생한  도메니코  스카를라티와  만나  오르간과  하프시코드  연주  그의  멜로디에서  벨칸토  양식은  독일의  내면적인  힘찬
          리듬에 성악적이라고 평가된다.                                시합를 하여 그 뒤부터 그와 친교를 맺었다                         표현과 결부되어 호모포니의 방향으로 향한다.


          독실한 개신교(루터교) 신자인 헨델 역시 바흐처럼 개신교회  헨델은 그 후 영국으로 건너가 1732년까지 오라토리오를  또한 바로크 특유의 일정한 악형(樂型)의 반복이 사라반드,
          교회음악을  발전시키고자  했다.  영국에서  활동하면서  작곡하기 시작하였다.                                                    쿠랑트,  가보트  등의  리듬에  지탱되면서  단조롭게  고수
          개신교인  영국국교회와  교회음악을  위한  노력을  하였고,                                                              (固守)되고  있는  경우가  많으며,  바흐에서  볼  수  있는
          대표적인  교회음악은  《메시아(Messiah)》로서  당시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필생의 대작인 《메시아》를 24일이란  표현의  길이라든가  다양성은  없으나  그  대신  알기  쉽고
          영어  번역  성경인  킹  제임스  성경의  구절에  곡을  붙인  단기간에  탈고하였고  1742년  4월  12일  더블린에서  명쾌한 표정을 보여준다. 그는 합창에서도 뛰어난 솜씨를
          오라토리오이다.                                        초연하여 절찬을 받았다. 《메시아》 초연후 8년째인 그가  발휘했다.
                                                          65세 되던 해에는 완전한 승리자가 되었다. 그의 생존 중
          생애                                              《메시아》 공연만 해도 34회나 되었다고 한다.                      명랑, 활달한 현세적 음악
          헨델은 프로이센의 할레(현재는 독일 영토)에서 태어났다.                                                                 헨델(독일)은  독일의  음악가이면서도  그  중요한  활동의
          함부르크, 피렌체 등지에서 활동하다 1712년 이후 런던에  1732년의  《에스테르》  개정판에  이어  1735년  사순절(                         거의  대부분을  영국에서  전개했다.  그의  음악은  같은
          정착하였다.  아버지의  권유로  법대에  진학하였지만,  한  四旬節)에는 성가작품을 포함한 약 15편의 오라토리오를  나이의  J.  S.  바흐(독일)에  비해  보다  근대적인  경향이
          달만에 오르간 주자로 활동하기 시작했다.(난생 처음 한번  헤이마케트  극장에서  연속  연주하여  점차  오라토리오  강하고, 대위법적이기보다는 화성적인 울림에 넘쳤다.
          들어보는 클래식 수업, 2020)                              작곡가로서의 명성을 높였다.
                                                                                                          기법적인  엄밀함은  바흐(독일)에게  떨어진다  하더라도
          이후  앤  여왕의  비호를  받아  오페라  작곡가로  이름을  또 1736년에는 《메시아》에 버금가는 유명한 오라토리오  그 현실 긍정적인 명랑성 · 활달함은 독자적인데, 그것은
          떨치게  되었다.  1726년에는  영국에  귀화하여,  죽을  《알렉산더의  향연(Alexander’s  Feast)》을  작곡하고  영국이라는 근대 사회를 활동 기반으로 함으로써 비로소
          때까지  영국에  살면서  오페라  46작품과  오라토리오  23            1738년∼1751년까지도  거의  모든  삶을  오라토리오의  가능했다고 하겠다.
          작품, 많은 양의 교회음악은 물론 많은 기악음악 작품을  작곡에 몰두하였다.
          남겼다.                                                                                            독일  음악사상  특이한  위상에  선  대음악가  헨델(독일)과
                                                          헨델은  가난한  음악가  구제회에  1,000  파운드를  남겨  바흐(독일) 두 사람은 끝내 서로 만나보지 못하고 저마다의
          그러나  헨델의  일생이  그리  평탄한  것은  아니었다.  놓고 세상을 떠났다. 영국의 국가적인 음악가로서 존경을  생애를 마쳤다.
          이탈리아 악파인 조반니 보논치니(1670년-1747년)와는  받아 사후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묻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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