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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Education / 교육





          피아노의 시인, 위대한 피아노 작곡가


          프레데리크 쇼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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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rederic Chopin)                                                                            QR코드 스캔하고
                                                                                                         명곡 듣기 ▲




          프레데리크 프랑수아 쇼팽(1810년 3월 1일 ~ 1849                그의  음악은  당시에도  완전히  이해되지  않을  정도의  리스트의 작곡 스타일 자체가 웅장한 효과, 화려함만을
          년  10월  17일)은  폴란드의  피아니스트·작곡가이다.    음악이어서 그와 비슷한 곡을 작곡한 몇 사람은 사후  부각시키기  위한  악절들을  상당히  많이  썼다.  즉
          “피아노의  시인”이란  별칭을  가진  쇼팽은  가장  쇼팽과  대등한  명성을  얻기도  했다.  대표적으로  나쁘게 말하자면 곡 전체에 있어서 안 써도 될 부분을
          위대한 피아노곡 작곡가 중 하나로 손꼽히며, 조국인  고트샬크(가초크)와  스테판  헬러가  있다.  그렇지만  남발했다는 점이다.
          폴란드에서는 가장 존경받는 위인이다.                            오늘날엔 쇼팽이 낭만주의 작품의 대명사처럼 불리며,
                                                          대중들이 가장 잘 아는 낭만주의 피아노 작곡가 중의 한  쇼팽은 그런 악절들을 거의 쓰지 않았고 기교 자체를
          그는  낭만주의  클래식  음악사,  특히  피아노계에서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중시하는  게  아니라  내용적인  측면에서  기교적인
          프란츠  리스트와  함께  최고의  업적을  이룩한                                                                    악절을 단순히 도구로 취급하는 스타일이었기 때문에
          작곡가이다.  폴란드인이  자부심을  갖고  존경하는  피아노로  다양한  음색을  구현하기  위해  페달을  리스트보단  기교적인  효과를  중시하는  악절들이
          폴란드 최고의 위인 중 한 명이기도 하다. 폴란드의 관문  적극적으로 사용했다. 장식음이 대부분 기교적이기만  상대적으로 눈에 덜 띄거나, 어떤 부분은 단순하게 봐선
          바르샤바의 공항 이름도 바르샤바 쇼팽 국제공항이다.  한  악절  정도로  취급됐던  당시  쇼팽은  장식음을  어려운 악절인지 아닌지 파악하기 어렵게도 쓰여있다.
          그를  기념하기  위하여  1927년  만들어진  쇼팽  국제  기능적으로 사용하여 선율의 하나로서 취급하여 루바토
          피아노  콩쿠르도  폴란드  역대  대통령들의  중요한  기법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주요 작품
          공무이자  매년  국가지정  관광시즌으로  지정될  만큼                                                                 쇼팽은 필드가 창시한 살롱음악인 녹턴을 깊고 세련된
          피아노  분야  최고  위상의  콩쿠르로  명망을  떨친다.  쇼팽의  생전에는  작품이  대중에게  널리  인기를  끌지  장르로  승화시켰으며  여기서  녹턴은  3~4분  내외의
                                                          못했다.  당시  악보  업계에서  원하던  피아노  곡은  짧고  간결한  21개의  곡으로  구성되어있다.  일반적인
          작품 성향                                           가볍고  경쾌하면서도  아마추어들도  어렵지  않게  춤곡인  폴란드의  마주르카나  빈의  왈츠의  선율과
          쇼팽은 일평생 거의 피아노를 위한 곡만을 작곡했다.  연주할 수 있는 것이었다. 당시에는 피아노가 중산층  표현의  폭을  넓혔다.  또한  전주곡을  독립적인  장르로
          가곡이나 다른 악기를 위한 곡 같은 다른 장르의 작품도  가정에  빠르게  보급되던  시점이었지만  아직  라디오,  만든 장본인이다.
          있긴 하지만 피아노 곡이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전축이 나오기 이전이었고 피아노가 오늘날의 오디오
          첼로 소나타나 가곡과 같은 곡이라 하더라도 그의 모든  기기 역할까지 도맡던 상황이었다. 쇼팽은 당시 악보  쇼팽의  작품과  재능은  다른  작곡가에게  영향을  많이
          작품에는 피아노가 들어간다. 당대는 낭만주의 음악의  업계에서 원하던 종류의 곡을 작곡하기보다는 내면성,  주었다.  슈만은  쇼팽의  선율을  따서  작곡한  그의
          시대였음에도  쇼팽은  자신의  음악이  낭만주의로  임기응변을 중시하는 비전통적인 작품을 만들었다.                                        《사육제》를 쇼팽에게 헌정했다. 프란츠 리스트는 그의
          평가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심지어 초기에는 몇몇                                                                   《Harmonies  Po tiques  et  Religieuses》  가운데  한
          사람들에겐 낭만주의자로도 인정받지 못했다.                         동시대의 작곡가이자 쇼팽의 동료이기도 했던 리스트의  악장인  〈Fun railles〉를  쇼팽에게  헌정했고  그  때가
                                                          음악에  비해  난이도  면에서는  왠지  모르게  어렵다는  의미심장하게도  1849년  10월이었다.  그  곡의  중간
          그의  대담한  전조나  그  당시  절대적으로  기피됐던  평가를 하지 않는 듯하지만 피아노를 치다가 피아노를  부분은  쇼팽의  유명한  폴로네이즈  53번의  옥타브
          불협화음, 생소한 기교 등은 그를 음악사에서 완전한  부숴버리고 싶을 정도로 애매하게, 왠지 모르게 어려운  트리오를 연상케 한다.
          돌연변이로  만들다시피  했고  심지어  그를  제대로  된  패시지가 눈에 엄청 자주 띈다. 리스트와는 다르게 왠지
          음악교육을  받지  못한  아마추어  음악가로  오해하고  어렵게 들리지는 않으나 상당히 어려운 곡들이 많다.  그의  작품들은  대다수가  피아노를  위한  것일  정도로
          착각하게 만들 정도였다.                                   이유를 따지기에 먼저 하나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피아노 음악사에 큰 획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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