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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Education / 교육





          피아노의 왕, 교향시의 창시자!


          프란츠 리스트


                                                                                                          마이라이프
          (Franz Liszt)                                                                                QR코드 스캔하고
                                                                                                         명곡 듣기 ▲




          프란츠 리스트(독일어: Franz Liszt, 1811년 10월 22일 ~ 1886  정주하여 음악 교사의 생활을 계속한다.                           1886년에는 바그너(독일) 탄생 75주년을 축하하는 음악제가
          년  7월  31일)는  헝가리  태생의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로,                                                          각지에서 열려 리스트(헝가리)는 런던, 파리를 거쳐 바이로이트
          교향시와 단악장 소나타를 최초로 작곡했다.                         행동적인 낭만주의자                                      로 향했는데, 그 도중에 폐렴에 걸려 7월 31일 바이로이트에서
                                                          리스트(헝가리)가 음악사에 남긴 최대의 공적은 바그너(독일)               타계했다.
          어려서부터 뛰어난 음악적 재능을 나타냈고, 파리에 가서는  와 함께 낭만주의 음악을 크게 빌고 나아간 점에 있다.
          훌륭한  연주가로  인정받아  "피아노의  왕"이라  불리었으며,                                                            작품
          이  별칭은  오늘날까지도  리스트를  의미하는  명칭으로  이 두 사람의 적극적인 행동성에 비하면, 같은 낭만파인 슈만  그는 19세기의 대표적인 피아노 연주가이자 작곡가로, 그의
          자리잡았다.                                          (독일)이나 브람스(독일)의 활동은 오히려 보수적이었다고까지  기교는  피아노에  오케스트라의  색채를  가미해서  생기가
                                                          할 수 있을 것이다. 그의 인생을 다채롭게 채색하는 이 행동성은             넘치도록 한 데에 있다.
          뛰어난  기교로  유럽에  명성을  떨쳤고,  지금도  역사상  다소 화려하고 외면적이면서도 왕성한 설득력을 가진 교향시                             프로코피에프가  "피아노는  타악기다"라는  특성  속에  곡을
          가장  위대한  피아니스트로  추앙받고  있다.  하지만  정작  적인 작풍에 가장 잘 반영되어 있다.                                       작곡했다면,  리스트는  "피아노는  그  자체로  오케스트라다"
          피아니스트로  활동한  시간은  채  10년이  안된다.  낭만시대                                                           라는  특성  속에  오케스트라의  모든  악기들을  피아노  한
          음악에 큰 공헌을 했다.                                   리스트(헝가리)가  교향시의  완성자라고  불리는  것도  그  대로  동시에  표현할  수  있는,  그러면서  동시에  피아노라는
                                                          때문일 것이다. 또 쇼팽(폴란드)과는 다른 화려하고 거장적인  악기의  장점들을  극대화하는  세세한  표현과  기교의  극한을
          그의 가장 유명한 작품 중에서는 <메피스토 왈츠>, <헝가리  피아노  연주법의  개척도  이  성격에  유래하고  있다.  이러한  추구하였다.  대표적으로  그의  베토벤  교향곡  피아노  편곡,
          광시곡>, <사랑의 꿈 3번 >, <라 캄파넬라>, 등이 있다.             행동성은 원래 낭만주의 음악에 내재하는 요소의 하나로서,  베를리오즈  교향곡  피아노  편곡,  바그너의  탄호이저  서곡

          리스트만의 특별한 기교들과 표현들이 이 곡들에 들어있다.  그런  만큼  승적에  들어간  만년의  변모는  바그너(독일)의  피아노 편곡, 대연주회용 독주곡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헝가리 광시곡 2번을 예를 들어 옥타브를 치면서 다른 음을  카톨리시즘으로의  전향과  함께  낭만주의  음악의  쇠퇴라는
          연타하는 기교가 있다. 음악 전공생들이 거쳐야 하는 고난도  평을  듣기도  한다.  또한  창작·연주면에서의  공적과  함께  피아노  뿐만이  아니라  낭만파  시대  대표적인  작곡가  중  한
          레파토리이다.                                         바그너(독일)를 비롯한 그리그(노르웨이)나 스메타나(체코) 등  명으로서  신낭만파에  속하고  교향시를  창시하여  음악에
                                                          동시대의 음악가들에게 적극적인 원조와 격려의 손길도 결코  문학적  요소를  도입하고  자유스러운  화성을  사용하여  큰
          연주 여행의 시작                                       간과할 수 없는 공적의 하나이다.                              영향을 주었다. 그 작곡의 수는 매우 많고, 그 평가는 오늘에
          1823년 아버지와 함께 파리에 가서 음악원 입학을 지망했으나                                                              있어서  각각  다르나,  symphonic  poem의  형식의  완성,  또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거부되고, 결국 작곡만을 개인 교수에  그의 친구 바그너                                                      근대적  색채의  관현악법의  일면을  개척한  것은  동일하게
          의해 배우게 되었다.                                     딸  코지마의  남편이었던  바그너(독일)는  리스트(헝가리)의  인정받고 있다.
                                                          사위가 되지만, 또 훌륭한 친구이기도 했다. 이 두 음악가의
          한편,  이듬해의  런던  여행을  시발로  해서,  이후  파리를  성격은 많은 점에서 공통되어 있었던 것이다.                                 또한  인상주의  특징의  피아노  곡들을  작곡하여  인상주의를
          거점으로  하는  연주  여행이  정기적으로  행해지게  된다.  만년의 리스트(헝가리)는 그 정력의 대부분을 ‘종합 예술’이라는  시작했다고  보기도  하며,  이후의  모리스  라벨과  클로드
          이  동안  작곡가로서도  데뷔했지만,  이  면에서의  평판은  바그너(독일)의  커다란  이상의  실현을  위해  소비되었다고도  드뷔시에게  큰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후기에는  무조성의
          연주가로서의  명성에는  아직  미치지  못했다.  1827년(16세)  할 수 있는데, 그런만큼 1883년(72세)에 바그너(독일)를 잃은  실험적인 곡들을 작곡하는 등 피아노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아버지의 죽음으로 연주 여행을 중단, 이후 수년간은 파리에  슬픔은 컸다.                                                       인물 중의 한 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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