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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Education / 교육






          독일의 작곡가이자 비올리스트, 음악 이론가

          폴 힌데미트


                                                                                      마이라이프
          (Paul Hindemith)                                                         QR코드 스캔하고
                                                                                     명곡 듣기 ▲




          폴  힌데미트(Paul  Hindemith;  1895년  11월  16일  ~  1963  1920년대  중반  이후,  힌데미트는  ‘게브라우흐스무지크          교육,  실천,  철학적  성찰을  아우른  예술가였다.  특히
          년  12월  28일)는  독일의  바이올리니스트,  비올리스트  및  (Gebrauchsmusik)’,  즉  ‘실용음악’이라는  개념을  제안하며  그의  이론서  *《The  Craft  of  Musical  Composition》*
          작곡가이다.  프랑크푸르트  암마인의  고등  음악학교를  음악의  사회적  기능을  강조했다.  이는  음악이  예술가만의  는  이후  세대의  작곡가들에게도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졸업하고  프랑크푸르트  가극장의  제1악장으로  일하는  등  전유물이  아닌,  교육과  실생활  속에서도  적극적으로
          초기에는 바이올린 연주자로서 이름을 날렸다.                        활용되어야 한다는 철학에 기반한다.                             폴  힌데미트의  음악은  격변의  시대  속에서도  흔들림  없이
                                                          이  시기의  작품들은  대체로  아마추어  연주자도  소화할  수  예술의  본질을  탐구하려는  지성의  여정이었다.  오늘날
          제1차  세계대전  후  작곡가로  활동하였는데,  《현악  4중주  있는  구조와  형식을  지니며,  대위법적  구성과  리듬감이  그의 음악은 여전히 전 세계 무대에서 연주되며, 그 깊이와
          3번》은  음악계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켰다.  그  후  특징적이다. 대표작인 《루두스 토날리스(Ludus Tonalis)》는  구조미로 많은 이들의 귀를 사로잡고 있다.
          실내악 작품, 가곡 《성모 마리아의 생애 작품번호 27》 등을  바흐의 《평균율 클라비어곡집》에 대한 20세기적 응답이라
          발표하고,  1930년  경부터  신고전주의적인  중후한  작품을  할 수 있다.                                                   음악 이론가로서의 면모
          내놓았다. 교향곡 《화가 마티스》는 이 시대의 유럽 음악을                                                                1940년  출간된  힌데미트의  대표적인  음악  이론서  *
          대표하는 걸작이다.                                      망명과 성숙의 시기 (1930년대 후반 ~ 1950년대)                 《The  Craft  of  Musical  Composition》*은  당대의  전통적
                                                          나치  정권과의  갈등으로  독일을  떠나  미국으로  망명한  조성체계를  뛰어넘는  새로운  이론적  기틀을  제시하였다.
          힌데미트는 고전적인 형식을 기반으로 하되, 현대적인 음악  힌데미트는 이 시기 음악적으로 한층 더 깊은 철학적 성찰을  이  책에서  그는  모든  음정을  중심음(Central  Tone)과의
          언어를 끊임없이 탐구하며 자신의 독자적인 세계를 구축한  담기  시작한다.  오페라  《화가  마티스(Mathis  der  Maler)》                   관계로 설명하며, 현대 조성음악의 확장 가능성을 탐구했다.
          인물이다.                                           는  종교개혁  시대를  배경으로  예술가의  존재  의의를  묻는  그의  체계는  무조음악이나  12음기법과는  다른  방향으로,
          그는  단순한  작곡가를  넘어,  시대의  변화  속에서  음악의  대작으로,  힌데미트의  예술적  사유가  집약된  작품이다.  보다 구조적이고 논리적인 작곡 기법을 지향했다. 이 이론은
          본질과 사회적 역할에 대해 깊이 성찰했던 예술가였다. 그의  또한,  칼  마리아  폰  베버의  주제를  재해석한  《심포닉  특히 교육 현장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으며, 그의 제자들과
          음악  세계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뚜렷하게  구분되며,  각  메타모르포시스(Symphonic  Metamorphosis)》는  화려한  후대 작곡가들 사이에 널리 전파되었다.
          시기마다 독특한 작곡적 성격과 예술 철학을 담고 있다.                  오케스트레이션과 정교한 구성으로 큰 사랑을 받았다.
                                                                                                          유산 – “음악은 인간을 위한 것”
          표현주의와 실험의 시기                                    후기의 영적 성찰 (1950년대 ~ 1963년)                      폴  힌데미트가  남긴  음악적  유산은  단순한  작품  목록에
          (1910년대 후반 ~ 1920년대 초반)                         말년의  힌데미트는  유럽으로  돌아와  보다  절제된  형식과  그치지  않는다.  그는  “음악은  인간을  위한  것이며,  삶을

          힌데미트의  초기  작품은  제1차  세계대전  이후의  불안정한  영적인 깊이를 지닌 작품들에 집중한다. 특히, 월트 휘트먼의  풍요롭게  하는  실천이다”라는  확고한  믿음  아래,  음악을
          사회  분위기와  맞물려,  강렬하고  실험적인  표현주의적  시를  바탕으로  한  링컨  추모  레퀴엠  *《When  Lilacs  Last  사회와  연결하려  했다.  이러한  철학은  ‘실용음악’이라는
          색채를 띠고 있다. 오페라 《산크타 수산나(Sancta Susanna)         in  the  Dooryard  Bloom’d》*는  그의  인문주의적  시각이  개념을  탄생시켰고,  그  영향은  클래식뿐  아니라  교육
          》는  금기와  종교,  인간  내면의  갈등을  대담하게  다룬  돋보이는 걸작이다.                                                음악, 실내악, 아마추어 연주 문화까지 광범위하게 퍼졌다.
          문제작으로, 당대에 큰 충격을 안겼다.                                                                           힌데미트의 음악은 때론 엄격하고 구조적이지만, 그 속에는
                                                          구조적 지성과 예술적 사유의 융합                              인간과 세계에 대한 깊은 사유가 깃들어 있다. 오늘날 세계의
          실용음악을 향한 전환                                     힌데미트는  단순히  새로운  음향을  탐구한  작곡가가  무대에서  그의  음악이  여전히  활발히  연주되고  연구되는
          (1920년대 중후반 ~ 1930년대 초반)                        아니었다.  그는  음악을  사회와  연결시키고자  했으며,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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