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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Economy / 부동산
하우스시팅으로
내 집 마련 자금까지 마련한 이야기
18개월간의 하우스시팅과 절약 생활이 나를 집주인으로 만들어줬다
나는 42세의 이혼한 스탠드업 코미디언이다. 이건 불행을 호소하는 글이 아니라, 단지 내 맡게 됐다. 고양이에서 강아지까지, 집에서 집으로 옮겨 다니는 생활이 이어졌다. 짧게는
인생의 배경을 설명하기 위한 이야기다 MBA도 있고, 여러 번 번아웃을 겪으며 자본주의 일주일, 길게는 몇 달간 머물렀고, 중간에는 친구 집에서 신세를 지기도 했지만 미리미리
시스템에 적합한 사람이라는 자격도 갖췄지만, 나는 대기업에서 일하는 게 체질에 맞지 일정을 잡아 불편함을 최소화했다. 혼자인 시간을 좋아하는 내향적인 성격의 나에게
않는다. 그리고 이제 곧 주거 불안에 취약한 집단으로 꼽히는 45세 이상 독신 여성의 나이에 하우스시팅은 잘 맞았다. 반려동물들과 함께하는 시간 덕분에 외롭지도 않았다.
접어든다.
파키스탄에 계시던 내가 가장 좋아하던 삼촌이 돌아가셨을 때, 나는 인생의 덧없음을 주변 사람들은 내가 18개월간 하우스시팅을 했다는 사실에 놀라곤 한다. 특히 파키스탄의
직면했고, 내가 어떻게 살아가고 싶은지 깊이 고민하게 됐다. 그 결과, 나는 남을 도우면서도 내 가족은 더더욱 놀랐다. 그곳에선 집마다 경비원이 있을 정도인데, 호주에선 남의 집
창의적인 활동을 하고 싶었고, 어딘가에 정착해 내 뿌리를 내리고 싶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열쇠를 선뜻 맡긴다는 것이 이해되지 않았던 것이다. 그 시간 동안 나는 다양한 형태의
그 무렵 나는 이곳저곳 단기 임대를 전전하고 있었다. 월세로 $2,000을 내고 작은 방 하나를 집에 머물며 여러 동네를 체험해봤다. 각 집마다 책, 음악, 향신료, 주방용품이 달랐고, 이
빌리는 것도 내키지 않았고, 나이 들어 쉐어하우스에서 청소 당번표를 보며 사는 것도 싫었다. 경험을 통해 나는 내가 어떤 집에 살고 싶은지 명확하게 알게 됐다. 그 과정에서 내가 더는
없으면 안 되는 필수품들도 생겼다. 대표적인 게 에어프라이어다. 물론 이 생활에도 단점은
예전에는 집을 소유한다는 개념이 내게 낯설었다.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내 집이 없으면 늘 있었다. 가장 큰 문제는 불안정함이었다. 새로운 침대에 익숙해지는 데 시간이 필요했고,
남의 결정에 따라 쫓겨날 수밖에 없다는 현실을 깨닫게 됐다. 문제는 집세를 내면서 동시에 동물들과 친해질 즈음에는 또 다른 집으로 옮겨야 했다. 옷도 몇 벌 되지 않아 매번 같은
저축하기가 너무 어렵다는 점이었다. 그러던 중 한 친구가 알려준 빅토리아주 주택 지원 옷으로 조합을 바꿔 입어야 했다.
제도에 관심을 갖게 됐다. 이 제도는 정부가 주택 가격의 최대 25%를 부담해주는 대신, 해당
지분을 내가 나중에 되사들이는 방식이었다. 이 제도에 참여하려면 일정한 조건을 충족해야 그래도 쉐어하우스보다는 훨씬 좋았다. 혼자만의 공간이 있었고, 귀여운 동물들이 있어
했고, 은행 대출 자격도 있어야 했다. 그래서 나는 목표를 세웠다. 안정적인 일자리를 구하고, 외롭지 않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18개월간 하우스시팅과 절약 생활로 약 6만 달러를
계약금을 모으고, 그때까지 쉐어하우스는 피하자. 저축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그 후 나는 주택 지원 제도 자격을 얻게 되었고, 본격적으로
집을 보기 시작했다. 6주간 여러 집을 돌아다닌 끝에, 햇살 잘 드는 2베드룸 유닛을
예전에는 시장조사 분야에서 일했지만, 이익 중심적이고 영혼이 깎이는 환경이 싫어 떠났다. 발견했고 마당도 있는 그 집에 마음이 끌렸다. 가격, 위치, 크기 모두 만족스러워 바로
이후에는 우르두어 번역, 정신건강 지원, 의료 타이핑 같은 다양한 단기직을 전전했다. 오퍼를 넣었고, 운 좋게 수락됐다.
이번에는 좀 더 안정적이고, 나에게 맞는 커리어를 찾고 싶었다. 다행히 몇 달의 구직 활동
끝에, 비영리단체의 사회정책 자문직을 얻게 됐다. 예전의 직장만큼 연봉이 높진 않았지만, 이제 나는 내가 좋아하는 직장에서 일하고,
일에 보람을 느꼈고 지속 가능한 일이었다. 문제는 주거였다. 쉐어하우스를 피하면서 돈을 내 이름으로 된 집에서 살고 있다.
아끼기 위해 나는 하우스시팅을 시작했다. 예전에도 고소득 직장을 그만두고 호주 전역을
여행하며 잠시 이 생활을 해본 적이 있었다. 이번에는 멜버른에서 친구의 고양이 세 마리를 이 모든 건 18개월간의 하우스시팅과 절약 덕분이다. 계약금을 내고도 내 오프셋 계좌는
한 달 동안 돌보는 것으로 시작했다. 가장 뚱뚱한 고양이가 내 맨살 등 위로 뛰어올라 발톱을 여전히 튼튼하고, 이대로라면 정년 전에 대출을 갚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세웠던 순간은 충격적이었지만, 이후 또 다른 고양이를 돌보면서 고양이에 대한 애정을
되찾았다. 다시 하우스시팅을 할 거냐고? 물론이다. 다만 휴가 갈 때만.
그동안 나는 고양이를 한 마리 들일 예정이다.
점점 더 많은 하우스시팅 기회가 생겼고, 페이스북 그룹에 가입하면서 더욱 다양하게 집을 그리고 언젠가는 나 대신 집을 봐줄 하우스시터를 구해야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