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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Life / 라이프









                                설악산 지게꾼



                                  "임기종"











               한창때엔 하루에도 수없이 오가던 길이련만 등산로 초입에 들             왕폭포, 금강굴, 흔들바위, 대청봉 등 설악산 구석구석을 실핏줄           같이 있는 아이들이 그렇게 좋아할 수가 없었어요. 그때 처음 알
               어선 뒤에도 지게꾼 임기종(62) 씨의 얼굴엔 좀처럼 흥이 비치          처럼 타고 오르는 등산객들로 온 산이 붉게 물들면 지게꾼들도             게 된 것 같아요. 내 것을 나누면 더 많은 사람들이 행복해진다
               지 않는다. 외설악 입구인 신흥사 절 마당 앞에 보관 중인 지게를         이른 새벽부터 산을 오르내려야 할 정도로 일이 많았다. 휴게소            는 걸 말입니다.”
               살피러 간 사이 운무에 가려 있던 봉우리 하나가 대신 반갑게 얼          에서 등산객들에게 파는 생수, 막걸리, 얼음, 간식거리를 비롯해
               굴을 내민다. 깎아지른 저 산등성 기암괴석에도 그의 추억과 온           120킬로그램이 넘는 업소용 냉장고나 40킬로그램들이 가스통,            아들 앞에서 지게꾼 아버지는 늘 죄인이었다. 자식을 돌보지 못
               기가 남아있을까.                                    수행자들이 먹을 쌀가마니까지 인력으로 져 날라야 했던 그때를             하는 죄를 갚는다는 마음으로 수입의 90퍼센트를 자기보다 어려
                                                            임 씨 역시 다시 오지 않을 호시절로 기억할 뿐이다. 숱하게 넘어          운 이웃을 돕는 데 쓰겠다는 자신과의 약속을 결코 저버릴 수가
               우연히 마주친 어느 암자 스님에게 며칠 후 짐 나르는 일을 도와          지고 깨져가며 배운 지게질이었다.                            없었다. 아들 덕분에 인연을 맺은 강릉 ‘늘사랑의 집’을 시작으로
               달라는 예약까지 받아놓고도 임 씨의 얼굴엔 여간해 수심이 가                                                          현재 상용 씨가 머물고 있는 양양 ‘정다운 마을’, 강릉 ‘오성학교’,
               시질 않는다. 그게 다 일이 없는 걱정이다. 한때 삼사십 명을 헤         “등에 짐을 지고 가파른 산길을 오르내리는 게 쉽지는 않아도 일           속초 ‘청해학교’ 등이 그가 매년 네다섯 번씩 과자와 음료수를 잔
               아리던 지게꾼들이 가뭇없이 사라진 지금, 설악산엔 요즘 마지막           이 많을 때가 행복했지요. 길도 험한 데다 짐이 자꾸 기우뚱하니           뜩 사서 정기적으로 방문하는 장애인재활치료 시설들이다. 지역
               남은 지게꾼 하나 건사할 정도의 일거리도 찾기 힘들다. 손 때 묻         까 지게가 금방 부러져 일 년에 두세 개를 새로 사야 할 정도였           의 독거노인들에게 한 달에 한 번 쌀과 라면을 가져다드리는 일
               은 임씨의 지게도 하릴 없이 개점 휴업하는 날이 더 많아졌다. 몇         지만 열심히 일하면 한 달 200만원 벌이는 됐으니 그 돈으로 장          도 거르지 않고 해왔다. 그렇게 지금껏 자선활동에 쓴 비용이 쌓
               년 전 설악산 주요 등산로에 자리 잡고 있던 매점, 휴게소, 산장         애인 보호시설에 맡겨 놓은 우리 아들도 보러 가고, 장애인 치료           이고 쌓여 1억여 원을 넘었지만 아들을 향한 속죄의 마음은 가슴
               이 모두 철거된 후 50여년 경력의 이 나이 지긋한 지게꾼을 고정         시설들 찾아다니며 생필품이며 먹을 것도 사다 줄 수 있었고요.”           속에 묵은 빚으로 쌓여만 간다.
               적으로 불러주는 데는 매달 초하루, 초사흘 제(祭)를 지내는 울산
               바위 계조암(繼祖菴) 한 곳뿐이다.                          임기종 씨는 현재 보증금 180만원, 월 임대료 8만 원짜리 허름          “상용이 때문에 시작했지만 워낙 가진 게 없는 형편이라 남들만
                                                            한 영구임대아파트에서 정신지체에 언어장애, 거동까지 불편한              큼 자랑할 일도 못 됩니다. 오히려 그것 때문에 욕만 많이 먹는
               “그래봐야 한 달 수입이 70만 원도 안 되지만 잊지 않고 찾아주는        아내와 단 둘이 산다. 160센티미터의 키에 몸무게 58킬로그램           걸요. 제 앞가림도 못하는 주제에 왜 남한테 돈을 쓰느냐며 비아
               곳이 있는 것만 해도 감사하게 생각해야지요. 80킬로 넘는 짐을          에 불과한 단구의 지게꾼에겐 정신연령이 예닐곱 살 정도인 아             냥거리는 사람이 거의 전부에요. 하도 삐딱하게 보는 사람이 많
               지고 계조암까지 2킬로미터 남짓한 산길을 오르는 데 1시간 20          내와 그보다 더 심각한 중증장애를 갖고 태어난 아들 상용 씨가            아 그만해 봤더니 내가 먼저 미치겠더라고요. 수중에 돈이 생기
               분 정도가 걸려요. 짐삯은 예나 지금이나 40킬로 기준 2만원으          세상의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들은 오래 전에 장애인시            면 마음이 불안해서 잠이 안와요. 안 갖고 있어야 마음이 편하
               로 정해져 있어 따로 흥정할 것도 없습니다. 그마저도 지게 일이          설로 거처를 옮겼다. 올해 서른여섯 살인 아들은 성인이 된 지금           더라고요."
               없으니 평소엔 건물 철거 현장에 막일을 나가기도 하는데 일거리           도 겨우 혼자 대소변을 가릴 수 있고 혼자선 제대로 몸도 가누기
               가 많지 않아 집에서 노는 날이 부지기수에요.”                   어려워 하루 종일 누군가 옆에서 보살피지 않으면 안 되는 중증            한평생 어깨를 짓누르던 죄책감을 이겨내려고 얼마나 이를 악
                                                            장애인이다.                                        물고 살아왔던지 이제 그에겐 치아 한 개가 남았을 뿐이다. 지
               모처럼 외설악까지 함께 온 아내(58, 최순덕)가 앉을자리를 가늠                                                       인들은 우선 몇달 간 지게 일로 조금씩 모은 전 재산 400만 원
               하는 동안 설악산의 마지막 남은 지게꾼 임기종씨는 지게를 꺼            “집에서 데리고 살 때는 제가 나간 사이에 두 모자가 집에 불이라          으로 치과 치료부터 받으라고 성화지만 임 씨는 그 중 350만 원
               내와 아이 어르듯 구석구석 손으로 어루만진다. 지게 일이 끊겨           도 내지 않을까 전전긍긍하던 집주인이 이사한 지 며칠 만에 셋            을 또 동네 노인정 어르신들의 효도관광을 위해 내놓았다. 화창
               도 산 입에 거미줄이야 치겠냐고 말하지만, 그 역시 이 일마저 그         방에서 쫓아낸 적도 많아요. 그래도 달리 변명할 말이 있어야 버           한 10월의 어느 날, 제천 청풍호는 ‘죽기 전에 꼭 모노레일 한번
               만두고 나면 별다른 수입이 없으니 재산목록 1호인 지게를 애지           텨보지요. 살 데가 없어 돼지 키우던 축사 같은 곳에서 지내보기           타보고 싶어 하시던’ 속초 조양동 노인들의 웃음소리로 행복해
               중지 여긴다.                                      도 했는데 그때가 마음은 제일 편했어요."                       질 것이다.

               “6남매 중 셋째로 태어났는데 집안도 어렵고 부모님도 일찍 돌아          다 자란 10대 아들을 열악한 환경에서 더 이상 혼자 돌볼 수 없게         “있는 사람은 손에 움켜쥐고 내놓을 줄을 모르고, 없는 사람은 하
               가셔서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안 해 본 일이 없어요. 남의 집 머        된 그는 결국 강릉에 있는 장애인보호시설에 아들을 맡기고 지             고 싶어도 물질이 안 따라줘서 못하는 게 봉사인 것 같아요. 하루
               슴살이부터 시작해 목공소, 자전거포, 철공소 점원, 목욕탕 때밀          금껏 하루도 마음 편한 날 없이 살았다. 아니 어쩌면 아들 덕분에          세 끼 굶지 않고 살면 되지, 필요 이상 쌓아둬서 뭐에 쓰겠어요?
               이…. 배운 게 없으니 할 수 있는 게 없었어요. 그러다 몸만 성하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걸 깨우치게 됐으니 전화위복이었을지도              남들은 이해 못한다지만 나는 힘이 닿는 한 죽을 때까지 남을 행
               면 할 수 있는 지게꾼 일을 소개받은 덕에 늦게나마 장가도 가고          모른다. 25년 넘게 숙제처럼 꼬박꼬박 거르지 않고 있는 그만의           복하게 하는 일을 하고 싶어요. 아들에게 죄 갚을 돈을 벌어야 하
               상용이도 낳고 그랬죠. 상용이한테 장애만 없었어도 더 좋았겠지           ‘특별한 자선활동’이 아들을 떠나보내면서 시작됐기 때문이다.             니 지게꾼 일을 계속할 수 있으면 바랄 게 없겠어요."
               만 그것도 다 타고난 팔자인데 누굴 원망하겠어요.”
                                                            “상용이를 그곳에 데려다 주고 나오는데 나만 편하게 살려고 그            오랜 세월 말없이 그를 지켜본 설악산은 뭐라고 위로해주었을
               설악산은 한 해 약300만 명의 등산객이 찾는 유명 관광지라 지게         랬다는 죄책감이 들어 그냥은 못 오겠더라고요. 미안한 마음에             까. 가슴 한편에 옹이처럼 박힌 저 못난 아버지의 눈물겨운 사
               꾼이 많던 곳이다. 단풍철이 되어 비선대, 비룡폭포, 권금성, 토         음료수와 과자를 잔뜩 사서 트럭에 싣고 시설로 되돌아갔더니              랑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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