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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Article / 기사제공




            “다시 신앙의 순결 정신으로”




            잉글랜드-스코틀랜드 종교개혁사




            학술탐사를 마치며 2





                                                                                      송영근 (알파크루시스대)
            [편집자주. 본 필드스터디 학술 탐사는 지난 6월, 알파크루시스 University College의 22명의 참여자들을 통해 이루어졌다.
            영국-스코틀랜드의 교회사의 발자취를 밟는 귀한 여정이었다. 본 학술탐사 기행문은 앞으로 몇 주 동안 나누어 기고한다. 본
            교는 하반기 학술탐사 (오는 11월 12-26일, 로마-그리스-터키. 문의: 0450-752-150)를 앞두고 있다.]

            윌리엄 윌버포스는 세인트 존스 칼리지를, 올리버 크롬웰은 시드니 석세스 칼리지(Sydney Sussex College)를 졸업하였다. 또
            한 종교개혁가 토마스 크랜머(Thomas Cranmer), 토마스 굿윈(Thomas Goodwin)은 크라이스트 칼리지를 졸업했다. 캠브리
            지를 돌아보며 특별하게 느꼈던 것은 각 칼리지마다 꼭 갖추고 있는 건물들이 있는데 이것은 바로 홀(Hall)과 채플(Chapel)이었
            다. 홀은 식사와 공부 및 미팅을 할 수 있는 장소이고, 채플은 모든 학생과 교수들이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곳이었다. 학문 연
            구 뿐 아니라 하나님을 기억하고 예배하는 것을 가장 기본적인 것으로 여긴 것을 알 수 있는 단서였다. 그리고 뉴턴이 사과가 땅
                                                                                                               고 런던에서도 목회활동을 하였다. 성공회 기도서 작성
            에 떨어지는 것을 보고 만유인력을 발견했다고 하는 조그만 사과들이 열여 있는 사과나무도 보았다. 그러나 인류 역사의 위대
                                                                                                               의 중심에 있었던 캔터베리 대주교였던 토마스 크랜머
            한 순간을 지니고 있는 이곳 캠브리지는 하나님의 은혜와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하는 과학자들이 공존하는 곳이라 느껴졌다. 최
                                                                                                               와 막역한 사이로 1552년에는 그가 주도하여 공동기도
            고의 현대 물리학자라고 여겨지는 영국의 천재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이 연구하고 가르쳤던 곳이 바로 캠브리지 대학교이기 때
                                                                                                               서 작성에도 깊이 참여하였다가 1553년 ‘피의 메리’ 때
            문이다. 곳곳에 그를 느낄 수 있는 흔적들이 있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 그의 죽음을 기리는 장례식은 이곳에 위치한 교회에
                                                                                                               독일로 망명한다.
            서 드려지게 되었다.
                                                                                                               1559년 스코틀랜드로 돌아와 당시 로마 가톨릭교회 세
            캠브리지를 지나 탐사팀은 영국 최대의 중세 건축물인 고딕 양식을 지니고 있는 요크 민스터, 클리퍼즈 타워 등의 요크(York)로
                                                                                                               력인 프랑스에 의지하는 왕가에 불만이 많은 토착 귀족
            향했다. 반원형의 둥근 선을 위주로 하는 로마네스크 건축 양식과 비교되는 뾰족한 외관을 자랑하는 고딕양식을 보여주고 있었
                                                                                                               들과 종교개혁과 민족자주를 외치는 백성들 세력을 기
            다. 또한 이미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지어진 건물들을 고딕양식으로 보완하여 더 높게 증축한 모습도 보게 되었다. 잉글랜드 북
                                                                                                               반으로 비록 엘리자베스 1세와는 사이가 좋지 않았으
            쪽에 위치한 요크는 남쪽의 켄터베리와 함께 양대 성공회 대주교가 있는 곳이다. 성공회의 영적, 교회 행정적으로 중심에 있는
                                                                                                               나 그녀를 끌어들여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
            곳이라 할 수 있다. 요크 대성당 밖에는 로마에 기독교 활동을 허락했던 콘스탄틴 황제의 기마상이 있다. 그리고 스코틀랜드와
            많은 갈등의 시기에 잉글랜드를 지키는 곳으로 그 역할을 한 성곽을 볼 수 있었다.
                                                                                                               1560년에는 칼빈주의 신학에 기초한 스코틀랜드 신앙
                                                                                                               고백서를 만들어 의회의 공인을 받아 복음주의 교회정
             탐사팀은 둘째날을 맞이하며 요크로부터 113km 떨어져 있는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에 등재되어 있는 더럼 성과 더럼 대성당
                                                                                                               치의 길을 열었다. 이 신앙고백서는 1647년 ‘웨스터민스
            이 있는 더럼(Durham)으로 향하게 되었다. 작은 도시인 더럼은 도시 자체가 대학교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유명한 영화 ‘해리포터’
                                                                                                               터 신앙고백서’가 채택되기 전까지 스코틀랜드 개혁파
            를 촬영한 더럼 대성당은 규모와 높이가 엄청났다. 로마네스크 양식을 만들어진 이 대성당은 40년의 건축 끝에 1133년에 완공되
                                                                                                               교회의 신앙고백서가 되었다. 그리고 탐사팀은 에든버
            었다. 더럼을 떠난 탐사팀은 잉글랜드를 넘어 스코틀랜드로 향하게 되었다. 스코틀랜드의 수도인 에든버러는 도시 전체가 유적
                                                                                                               러 성을 방문했다. 이 성은 요새로서 7세기부터 캐슬 록
                                                                                                               이라 불리는 절벽 위에 세워졌고, 스코틀랜드의 영웅인
            지라 할 수 있을 만큼 오래된 건물들과 성을 가지고 있었다. ‘                                                                브루스와 윌리엄 웰리스의 동상이 에딘버러 성의 입구
            뉴타운’ 이라는 곳이 200년 정도 된 도시라는 이야기를 듣고                                                                 에 동상으로 서 있었다.
            도시 곳곳의 대부분의 건물이 200년 이상 된 역사를 가지고
            있는 것이 신기했다. 마치 과거의 역사 속으로 들어간 느낌이                                                                  현재 가장 오래된 교회인 12세기에 세워진 St. Marga-
            었다. 에든버러는 스코틀랜드 종교개혁의 중심에 있었다. 세                                                                   ret Chapel 을 보고,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의 통합 왕
            인트루이스 대학교와 글래스고 대학교 등 장로교 종교개혁                                                                     이 되어 영국의 스튜어트 왕조를 연 스코틀랜드의 제임
            운동이 정점을 찍고 발전되었다. 스코틀랜드 장로교의 시작                                                                    스 6세(잉글랜드의 제임스 1세)가 태어난 곳, 그의 어머
            이 된 스코틀랜드 종교개혁의 효시 존 녹스의 동상이 있는                                                                    니인 스코틀랜드의 퀸 메리가 살던 곳, 스코틀랜드 왕
            세인트 자일스 성당(St. Giles Cathedral)를 방문했다. 존 녹                                                         과 귀족들이 회의를 하던 곳, 그 당시 사용되던 무기들
            스는 이곳에서 시무했으며 그곳에서 그는 매주 설교를 했다.                                                                   을 관람할 수 있었다.
            존 녹스는 종교개혁을 부르짖다가 노예로 전락하기도 하였고
            구사일생으로 살아 돌아와 잉글랜드의 베윅과 뉴카슬 그리                                                                     스코틀랜드의 제임스 6세는 잉글랜드로 떠나기 전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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