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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Education / 교육







            클래식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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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드워드 엘가                                                                                       QR코드 스캔하고

                                                                                                             명곡 듣기 ▲



            영국의 작곡가. 낭만주의 또는 넓은 의미의 국민악파 작곡가               지 않은 작곡가였다. 하지만 1899년에 발표한 수수께끼 변주             라며 신나게 깐다. 이에 아지라파엘은 "편안한 마음으로 보낼
            로 분류된다. 잉글랜드의 우스터 근처에서 태어났다. 가톨릭  곡이 엄청난 인기를 끌었고, 그 이후 오라토리오 제론티우스                            수 있지 뭐......"라고 얼버무리는데 사실상 크롤리의 주장에 손
            교회 오르간 연주자이며 피아노 조율사였던 아버지의 영향으                의 꿈, 위풍당당 행진곡, 교향곡 1번, 바이올린 협주곡이 연타            을 든 격이다.
            로 독학으로 음악을 공부했으며 성년이 된 엘가도 가톨릭 교               석으로 당시 영국은 물론이고 유럽에서도 대박이 나서 영국에
            회에서 오르간 연주를 했다. 그 사이 아버지의 권유로 변호사  서는 당대 최고의 작곡가로 제1차 세계대전 발발 전까지는 슈                          아내 캐롤라인 앨리스 로버츠(결혼 후 캐롤라인 앨리스 엘가)
            사무실에서 일을 하기도 했다.                               퍼스타와 같은 인기와 관심을 받기도 했다.                        와의 러브스토리도 유명하다. 엘가가 학생들에게 피아노를 가
                                                                                                          르치며 가난하게 살던 시절, 귀족(육군 중장)의 딸인 연상의
            그가 영국 왕실의 요청으로 작곡한 위풍당당 행진곡은 영국의  다만 1918년 이후에는 낭만적의 정점을 달리는 엘가의 작품                           여성 앨리스가 피아노 제자로 들어왔다.
            제2국가로 자리매김했으며 메리트 훈장과 빅토리아 여왕 훈                들은 당시 치고 올라오던 다른 젊은 영국 작곡가나 시벨리우
            장을 받았다. 영국의 고전음악 작곡가들 중에서는 그나마 일               스에 밀려 예전만큼의 인기는 없었다고 한다. 그래도 교향곡  앨리스는 엘가의 재능과 자질을 알아보고 그를 응원했으며 이
            반인들에게 이름이 널리 알려진 작곡가.                          2번과 첼로 협주곡은 유명하고 현재도 연주를 많이 하는 편.              내 두 사람은 사랑에 빠지게 된다. 두 사람의 배경이 너무나 크
                                                                                                          게 차이났기에 앨리스의 가족들은 둘의 관계를 극렬히 반대하
            우리에겐 위풍당당 행진곡과 사랑의 인사로 알려진 영국의 클               영국 20파운드에도 모습을 드러냈는데, 150번째 생일을 맞              였으나, 두 사람은 굴하지 않고 결국 자기들끼리 약혼을 했다.
            래식 음악가이다. 영국은 헨리 퍼셀(1659-1695)이 요절한 후          이하기 직전인 2007년 3월 13일 애덤 스미스와 교체당했다.
            로는 200년 넘게 유명한 영국 출신 음악가가 없어서 그 시대                                                            이 때 엘가가 앨리스에 대한 사랑과 감사를 담아 지어 헌정한
            영국인들도 당황스러워할 정도였는데 드디어 20세기를 시작                때문에 에드워드 엘가 탄생 150주년 기념행사를 준비하고 있              곡이 우리에게 7공주의 러브송으로 잘 알려져 있는 명곡 '사
            하며 200년만에 나타난 대작곡가이다.                          던 단체들이 이게 무슨 지거리야 허탈해했다고 한다. 참고로  랑의 인사(Salut D'Amour, 1888)'이다. 이에 앨리스는 '바람
                                                           이렇게 지폐에서 하차하게 된 이유는 얼굴 도안이 너무 위조               부는 새벽(The Wind at Dawn)'이라는 자작시를 지어 화답
            엘가를 시작으로 본 윌리엄스, 벤저민 브리튼 등의 세계적으               하기 쉬워서였다.                                      했다고 한다.
            로도 명성을 누리는 작곡가들이 등장했고, 덕분에 20세기의
            영국 고전음악은 중흥기였다고 평가받는 편이다.                      소설 멋진 징조들에서 살짝 놀림감이 된 적이 있다. 천사인  이듬해 두 사람은 마침내 결혼을 했고, 이후로도 엘가는 앨리
                                                           아지라파엘과  악마인  크롤리가  천국과  지옥에  대한  이야기           스의 내조를 받으며 수많은 명곡을 지었다.
            노년기에는 회의론자가 되긴 했지만, 장년기까지 독실한 가톨               를 나누는데, 크롤리가 "우리 지옥에는 베토벤, 브람스, 바흐,  하지만 앨리스는 1920년 남편보다 먼저 세상을 떠났고, 슬
            릭 신도로서 반가톨릭 정서가 강했던 당시 영국에선 성공이  모차르트 등등이 있지. 너희 천국에는 엘가와 리스트 뿐이잖                             픔에 빠진 엘가는 앨리스의 죽음 이후 한동안 작곡을 하지 않
            쉽지 않던 소수계층이었으며, 40살 넘게까지는 그리 알려지               아? 엘가의 곡과 함께 영원히 시간을 보낸다는 게 말이 되냐?"            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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