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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Education / 교육

















                                                                                   ↑↑↑↑
                                                                              마이라이프 QR코드
                                                                            스캔하고 명곡 모음 듣기


                                                      클래식에 대하여...



                                                      아르놀트 쇤베르크






         쇤베르크는 빈에서 헝가리 출신의 구두공인 사무엘 쇤베르크의  을 때 그의 재능을 인정했다. 구스타프 말러는 쇤베르크를 문하                              는 그의 친구 Josef Rufer와 산책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오
         아들로 태어났다. 작곡가 본인의 설명에 의하면 9세부터 바이올               생으로 두고 자신이 죽은 뒤에 그의 뒤를 봐 줄 사람이 없음을 걱             늘 독일 음악의 우위를 100년 동안 지속시킬 발견을 했다네." 이
         린을 배우기 시작하였으며, 독학으로 작곡을 공부했다고 한다. 학              정했다. 쇤베르크는 말러의 영향을 받았으며, 말러를 “성자”로 여             말은 오해의 여지가 많다. 하지만 이는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패
         창 시절에 폴카와 행진곡을 썼으며, 1889년 부친의 사후에는 가             겼다.                                              전을 빗대어 표현한 쇤베르크만의 조소적인 유머인 것이다. 그리
         족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하여 학교를 자퇴하고 은행의 직원연수                                                                 고 스스로가 모차르트와 바흐처럼 되고 싶어하는 야망을 담고 있
         과정에 참여한다.                                        하지만 쇤베르크의 작품은 대중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1907              기도 하다.
                                                          년에 《실내 교향곡 제1번》이 초연되었을 때 청중은 적었으며 반
         쇤베르크의 기억에 의하면 그가 작곡가 또는 예술가로서 음악적  응도 열광적이지 않았다. 1913년에 그 곡이 알반 베르크, 안톤 베                         쇤베르크는 많은 작품을 발표함으로써 그의 기법이 과거의 음악
         기초를 확립해준 인물이 세 명이있었다고 한다. 첫째는 음악이론,  베른, 알렉산더 젬린스키의 곡과 함께 다시 연주되었을 때 청중은  을 답습하지 않는 음악을 만들어낸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 정점
         시작, 그리고 철학의 기본을 전수해준 오스카 아들러였으며, 둘째              소리지르며 비난했다. 후에 쇤베르크의 가곡이 공연되는 동안에                은 《모세와 아론》인데, 그는 삼분의 이 가량을 썼지만 완성하지
         는 윤리, 도덕, 그리고 "관행 그리고 보편적 토속성에 대한 저항"            는 난동이 시작되어서 경찰이 출동했다고 한다.                        않았다. 결국 오페라는 모세가 표현하지 못할 정도로 고통스러워
         을 일깨워준 다빗 요제프 바흐였으며, 셋째는 1895년 아마추어                                                               서 소리치는 부분인데, 쇤베르크가 그 자신을 어떤 예언자로 생각
         오케스트라인 폴리휨니아에 첼리스트로 입단하면서 알게 된 지                 후에 쇤베르크는 12음 기법을 만들었다. 이는 후에 음렬주의로 발             하여 더이상 작품을 쓸 수 없지 않았겠냐는 설도 있다.
         휘자 알렉산더 젬린스키이다.                                  전하게 되는데, 그의 제자들이 그 기법을 받아들이면서 2차 빈 음
                                                          악파를 결성했다.                                        캘리포니아에 살면서 쓴 작품에서 그는 (전통화성은 쓰지 않았지
         이 지휘자는 쇤베르크의 재능을 간파하고 그의 초기작을 연주할                                                                 만) 전통적인 화음으로 다시 돌아왔다. 그때의 그는 자신의 음악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주고, 작곡수업도 몇 개월간 해주었다. 쇤              그들 중에는 안톤 베베른, 알반 베르크와 한스 아이슬러가 있다.  이 과거로부터 완전히 벗어났다고 생각했다.
         베르크는 그러나 작곡에 대한 대부분의 지식은 브람스, 바그너,  그는 음악이론가도 명성을 쌓았는데, 그의 대표적 저서로 《화성
         말러, 바흐, 그리고 모차르트와 같은 대가를 통한 연구를 통하여  이론》(Harmonielehre)이나 《음악 작곡의 기초》(Fundamentals  현재까지도 쇤베르크의 기법에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많은 사람
         획득하였다고 주장한다.                                     of Music Composition)가 있다. 이 저서들은 오늘날에도 출판되      들이 이를 음악으로도 생각하지 않는 반면 어떤 사람은 이 음악에
                                                          어 음악이론과 작곡의 교육에 있어서의 비중있는 참고자료로서                 깊게 공감하기도 한다.
         쇤베르크는 20대에 오페레타의 관현악 편곡으로 돈을 벌면서 현               의 역할을 하고 있다.
         악 6중주 《정화된 밤》(1899년)과 같은 작품을 썼다. 후에 그 작                                                           쇤베르크는 화가이기도 했다. 그의 작품은 프란츠 마르크와 바실
         품을 관현악으로 편곡하여 현재는 그의 가장 유명한 작품 중 하               제1차 세계대전은 그에게 큰 고비가 되었다. 군에 복무하면서 곡              리 칸딘스키의 작품과 같이 전시되어도 좋을 정도였다고 한다. 연
         나가 되었다.                                          을 제대로 쓸 수 없게 되었고, 그 시기에는 그의 미완성 작품만 남            극과 시, 그리고 정치 문제와 유대인들에 대한 책도 썼다.
                                                          게 되었다. 전쟁이 끝난 후 그는 음악의 질감을 단순하게 만들 수  1933년 쇤베르크는 나치에 의해 유럽에서 추방되어 1941년에 캘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는 쇤베르크의 작품 《구레의 노래》를 접했                있는 방법을 찾게 되었고 12음 기법을 만들게 되었다. 쇤베르크              리포니아로 이주했다. 1951년 로스앤젤레스에서 별세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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