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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Education / 교육







          미국의 근·현대 작곡가
          찰스 아이브스                                                                           QR코드 스캔하고
                                                                                               마이라이프


                                                                                               명곡 듣기 ▲




          1874년 미국 코네티컷 주 댄버리에서 태어났다.                     등을 일으키기도 했다. 이 때부터 작품을 발표하기 시작                  다. 위의 세 작품이 초연되는 것은 각각 1951년, 1946년,
          그의 아버지 조지 아이브스는 전직 군악대장으로 지역                    하였다.                                            1946년. 거의 50년 가까이 걸렸다.
          에서 밴드를 이끌다가 말년에 생계 문제 때문에 음악을
          포기하고 은행에 취직한 인물이었다.                             이  당시  발표된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교향곡  제1               1907년, 갑작스런 심장 질환과 그 다음 해 결혼 이후 그
                                                          번'(1898)이 있는데, 이 작품은 50년이 넘은 후 1953년            의 인생도 달라진다. 좀 더 작품 활동에 관심을 기울이면
          그런 아버지는 그가 음악에 대해 덕업일치를 포기하고  에 가서야 초연이 된다. 대학을 졸업한 후 아이브스는 보                                   서 건강 문제로 1918년 작품 활동을 줄일 때까지 많은 작
          아마추어의 길을 걷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험 영업사원으로 뉴욕 뮤추얼 생명보험사(AXA생명보험                   품들을 작곡하였다.

                                                          의 전신)에 입사, 사회에 발을 내딛는다.
          그와는 관계없이, 아이브스는 일찍이 음악에 대한 능력                                                                   이 당시 그의 대표작들이 쏟아졌는데, '휴일 교향곡', '뉴
          을 드러내었다. 12살에 밴드의 드럼 주자로 데뷔, 13살                업무 능력도 출중했는지, 아이브스는 1907년에 동료 미                 잉글랜드의 세 장소', '교향곡 제4번', 피아노 소나타 제2
          에는 교회에서 전속 오르가니스트로 임명될 정도였다.                    릭과 자신의 이름을 딴 보험사를 설립할 만큼 크게 성장                  번 '콩코드', 바이올린 소나타 제1~4번 등이 있다.
                                                          하였다.
          주로 지역 아마추어 악단에서 활동했기 때문에 정통 클                                                                   이들 작품은 무조성과 다양한 리듬 등 아이브스의 특징
          래식 음악보다는 대중 음악, 행진곡 등을 연주하는 일이  특히 자산 관리면에서는 책을 쓸 정도였다고. 직장에서  이 잘 살아있고, 소재 면에서도 미국의 문화와 예술에 기
          잦았고, 당연하게도 단원들이 삑사리를 내서 불협화음                    활발하게 활동을 하면서도, 아이브스는 꾸준히 작곡을  반하고 있어 그의 작품 세계가 완성된 시기로 평가된다.
          을 내는 일도 다반사였다.                                  하면서 음악 활동에도 힘썼다.

                                                                                                          1927년에 그는 절필을 선언한다. '아무것도 맞게 울리지
          이러한  경험들은  그에게  불협화음에  대해  관대하도록  사무실 금고에 악보를 쌓아놓고, 결혼 전까지 오르가니                                 않는다. (Nothing sounds right.)'라는 말과 함께 이루어
          만들어 주었고, 후에 그의 무조 음악에도 큰 영향을 미                  스트로 활동할 정도였다고한다.                                진 1954년 사망 전까지 계속된 이 침묵은 장 시벨리우스
          친다.                                                                                             의 침묵 다음으로 미스터리한 절필이다.
                                                          음악면에서도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무조음악과 다양한
          1894년에 예일 대학교에 입학하면서 아이브스는 당시  리듬을 실험하고, 미국의 전통 음악과 소재들을 음악에  음악활동은 그만두지 않아 다른 작품을 수정하곤 한 점
          미국의 대표 음악가 중 한 명인 호레이쇼 파커에게 작곡                  활용하는 시도를 하면서 미국 현대 음악의 길을 홀로 열                  을 고려해 볼 때, 건강 문제로 절필을 선언했을 가능성이

          을 사사한다.                                         기 시작한다.                                         높다고 추정되고 있다.
                                                          이 당시 작곡한 작품들로는 '교향곡 제2번'(1901), '어둠
          이 때부터 아이브스는 불협화음을 자신의 음악에 활용                    속의 센트럴 파크'(1906), '대답 없는 질문'(1906) 등이  이후 1930년 사업에서도 은퇴하여 새로운 작품을 쓰지
          하기 시작하였는데, 이로 인해 보수적인 그의 스승과 갈                  있는데, 이 당시에도 작품들은 여전히 빛을 보지 못했                   는 않고 기존 작품들을 손보는 데에만 힘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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