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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Life / 라이프








          큰 병에 걸려도






          큰 별일 없이 삽니다








          질병과 장애는 사람을 차별하지 않는다.

          우리 모두는 언젠가 아팠고, 지금도 아프고 있으며,
          언젠가 아플 것이다. 장애가 있다고 해서, 암이 찾아왔다고 해서

          인생이 멈추거나 하강 곡선을 그리지는 않는다.

          질병과 장애는 ‘극복’하는 것이 아니다.




          ① 조한진희(44세)                                  ② 굴러라 구르님(20세)
          사회단체 활동가, 전 다큐멘터리 감독                         본명 김지우, 인기 유튜버, 뇌성마비 장애인
          여성 인권과 장애 인권 운동 등에서 활동한다. 10년  코로나19 사태로 온라인 강의를 듣는 올해 새내기
          넘게 암으로 투병과 완치를 오가는 중이며, 그 경험 대학생. 영상 만들기를 사랑하며, 패션과 뷰티에 관
          을 엮어 책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를 펴냈다.                 심이 많고 여행과 군것질을 좋아한다.





         조한진희님은 “우리에게 필요한 건 더 많은 건강  획일적으로 구분하는 건 의미가 없어요.                                                여자들은 아프다고 하면 꾀병이냐는 오해를 사기
         산업이나 아프지 않은 몸이 아니라 아픈 몸에 대한                      조한 장기적인 의료가 필요한 장애를 가진 이들이                      쉽잖아요. 직장에서는 괜히 약해 보일까 봐 아프다
         상상력이다”라고 쓰신 적 있어요 . 두 분은 그 상상                    분명 있고, 환자이기도 하면서 장애인인 경우도 많                     는 말을 하기가 더 꺼려지죠.
         력을 확장하기 위한 콘텐츠를 만들죠.
                                                          아요. ‘교차성’이 중요해요.                                구르님 한편으로는 여성운동에서 지향하는 여성성
         조한 인간의 몸에서 질병을 완전히 제거하는 건 불                                                                      이 정해져 있다는 느낌도 받아요. 자립적이고, 굳
         가능해요. 질병이라는 자체가 몸의 항상성을 유지                       구르님 그런 의미에서 ‘장애 여성’이라는 말도 짚고                    세고, 비혼과 비출산을 지향하는 여성이죠. 그런데

         하기 위해 계속 찾아오는 거죠. 줄타기할 때 흔들리                     넘어가고 싶어요. 저는 장애라는 정체성과 여성이                      장애 여성에게는 자신의 아이를 낳고 기르는 일 자
         면서 중심을 잡는 것과 비슷한 이치예요.                           라는 정체성이 얽혀 있는 사람이잖아요.                           체가 여성운동이 될 수 있어요. 자유롭게 임신과

         구르님 유튜브를 시작한 게 장애를 알려 사람들의                       제 인터뷰 기사가 포털 메인에 걸린 적이 있어요.  출산을 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지지 않았으니까
         인식을 바꾸자는 의도는 아니었어요. 그저 초등학                       당시 제가 미성년자임에도 댓글 창에 온갖 성희롱 요. 장애가 있는 여성에게 “그 몸으로 어떻게 임신
         생 때부터 영상 만들기를 좋아한 것뿐이죠. 장애인                      이 난무했죠. 연애할 때도 장애 여성은 주체가 되 을 견디냐?”라고 하고, 심지어 임신 중단을 강요하
         의 서사에 장애의 의미를 담는 걸 좋아하지 않아요.                     는 경우가 별로 없어요. 지금 남자 친구는 비장애인 기도 하죠.
         유튜브도 일상 얘기 위주죠. 그런데 영상에 어쩌다                      인데 손잡고 길을 지나가다 보면 남자 친구에게 ‘엄
         휠체어가 등장하면 조회 수가 확 올라가요. 늘 고민                     지 척’을 날리거나 심지어 박수를 쳐주는 사람들이                     우리 모두는 끊임없이 ‘비교’하며 나 아닌 다른 사
         되는 지점이에요. 유튜버로서 조회 수를 올리고 싶                      있어요. 장애 여성과 비장애 남성이 사귀면 남성이                     람이 되고 싶어 해요.
         은 마음도 분명 있으니까요. 하하.                              헌신적이고 대단한 거예요. 그런데 반대로 장애 남                     조한 타인보다 과거의 나와 지금의 나를 비교하는
                                                          성과 비장애 여성이 사귀어도 남성이 능력 있고 대                     일이 많아요. 아프기 이전의 제 체력이 그립죠. “타
         어떻게 보면 질병과 장애, 단순 개인 특성 사이의                      단한 사람이라고 추켜세워요. 제가 아는 어떤 남성                     인과 비교하지 말고 내가 과거의 나보다 더 좋은 사
         경계도 모호해요. 예를 들어 저는 지금 콘택트렌즈                      장애인분은 연애할 때 주변에서 “저런 애도 연애하                     람이 됐는지 생각하며 살아라”라고도 하지만, 그보
         를 빼면 앞에 앉아 있는 두 분의 표정을 읽을 수 없                    는데”라는 말을 많이 들었대요.                               다 제게는 ‘지금의 나’를 받아들이는 게 더 어렵고
         는데 장애인으로 여기진 않잖아요?                                                                               도 중요해졌어요.

                                                          조한 ‘몸이 아프다’는 게 여성성을 강화하기도 하
         조한 복지 차원에서는 혜택을 위해 질병과 장애 등                      죠. 크고 건강한 몸을 가진 여성들이 “나도 한번 창                   구르님 여담이지만 저는 말하는 것과 달리 글은 정
         을 구분할 필요가 있지만 일상에서는 그 구분이 큰                      백한 얼굴로 쓰러져봤으면 좋겠다”라고 한탄하는                       말 못 써요. 하하. 자기 자신이 다 마음에 드는 사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이 사람이 어떤                      게 개그 소재가 되곤 하잖아요. 병약함은 성적 매력                    람이 어디 있겠어요. 그것에 대해 ‘나는 왜 나를 사
         니즈가 있는가?’가 더 중요하죠.                                                                               랑하지 못할까?’ 하고 자책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
                                                          이 아니라 족쇄인데 말이에요. 병약함을 여성성으
         구르님 뇌성마비도 다 똑같진 않아요. 뇌 일부가 손                     로 생각하고, 탄탄한 몸의 여성들을 여성스럽지 못                     해요.’내가 부러움을 느끼고 있구나’ 정도만 알아도
         상되기 때문에 저처럼 운동신경만 마비되기도 하                        하다면서 희화화하는 문화가 깨져야 여성들이 더 ‘                     된다고 봐요. 내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볼 줄 알게 되
         지만 언어 장애나 지적 장애를 동반할 수도 있죠.                      잘 아플 수 있는’ 사회가 될 거라 생각해요.                       면 그게 진짜 ‘보디 포지티브’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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